말기 암 치료를 잘 한다며 환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났던 서울 강남구의 한 한방병원이 거액의 진료비를 먼저 받은 뒤 운영을 중단해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이 병원은 올 초부터 재정난으로 임차료와 직원 월급도 못 주는 상황이었음에도 이를 숨기고 환자들에게 고액의 패키지 프로그램을 판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14일 서울 강남경찰서에 따르면 경찰은 병원 영업이 곧 중단된다는 사실을 숨기고 환자들에게 진료비를 선결제하도록 한 혐의(사기 및 의료법 위반)로 강남구에 있는 A 한방병원을 조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지난달 24일 사기 및 의료법 위반 혐의로 대표원장 이모 씨 등 병원 관계자 3명을 입건하고 출국금지 조치했다”며 “전날(13일) 실시한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자료를 분석 중”이라고 말했다.
강남 한복판에서 16층짜리 건물을 모두 사용하는 A 한방병원이 운영을 중단한 것은 지난달 22일이었다. 이에 금전적 피해를 본 환자들이 경찰에 진정서를 제출해 수사가 시작됐다. 경찰은 현재까지 환자 약 100여 명이 진료비를 돌려받지 못해 20억~30억 원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환자당 평균 수천 만원의 피해를 입은 것이다.
이 병원에서 2년 넘게 치료를 받았다는 한 환자는 “패키지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적게는 수백만 원, 많게는 1억 원을 결제한 환자도 있다”며 “지속적 관리를 해주겠다고 해서 선결제했는데 이렇게 큰 병원이 하루아침에 문을 닫고 돈을 안 돌려주니 황당하다”고 말했다.
대표원장 이 씨는 병원 직원 등이 모인 단체 채팅방에서 “지난해 사기 혐의로 구속된 병원장을 대신해 병원을 맡아 의료기관의 책임을 지속하려 노력해왔지만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고 보건소에서도 개설 허가 취소 처분을 받아 회생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며 “직원 급여와 환자 환불금 등은 병원 자금이 확보되는 대로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후 잠적한 상태다.
최미송 기자 cms@donga.com
손준영 기자 han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