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산 득점 1위 박철우의 변신 ‘혼자 할 수 있는 건 없다’ 깨달아 팀 발전시키려 포지션 변경 몸집 키우며 철벽 블로킹 준비
프로 19번째 시즌을 앞두고 미들 블로커(센터)로 변신 중인 박철우(한국전력)가 경기 의왕시 구단 체육관 코트에서 두 손에 배구공을 든 채 네트 앞에 섰다. 박철우의 왼쪽 팔뚝 안쪽에는 ‘몸이 그대를 거부하면 몸을 초월하라’란 뜻으로 쓴 영어 문신이 새겨져 있다. 의왕=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실업배구 시절인 2003년부터 성인 무대에서 뛰고 있는 박철우(38·한국전력)가 데뷔 20년이 지나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오퍼짓 스파이커(라이트) 자리를 떠나 미들 블로커(센터)로 포지션을 아예 바꾼다. 프로배구 새 시즌 박철우의 프로필에도 라이트 대신 센터가 적힌다. 박철우는 지난 시즌 후반기부터 주로 센터로 출장해 오고 있었다.
최근 경기 의왕시 구단 체육관에서 만난 박철우는 “라이트 때는 몸이 움직이는 대로 경기를 했는데 센터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동작을 생각하면서 해야 한다. 새로 배워야 할 블로킹 스텝도 너무 많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표정에선 즐거움이 넘쳤다.
박철우는 지난 시즌이 끝난 뒤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팀과 총보수 1억5100만 원에 1년 계약을 맺었다. 직전 시즌 총보수 7억 원과 비교하면 5분의 1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팀 내 입지가 그만큼 줄어든 것이다. 계속 살아남으려면 변해야 했다.
박철우에게 ‘잘한다’는 건 곧 자신이 점수를 올린다는 뜻이었다. 박철우는 V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한 경기에 50점을 올린 선수다. 50점은 지금도 국내 선수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으로 남아 있다. 남자부 통산 득점 1위(6583점) 주인공 역시 박철우다.
박철우는 “V리그에 남긴 기록 하나하나마다 내 배구 인생이 담겼지만 날개 공격수로는 유일하게 통산 블로킹 득점 톱10에 이름을 올린 게 가장 뿌듯하다. 다른 날개 공격수들에게는 없는 나의 장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철우는 블로킹으로 총 660점을 올려 이 부문 9위를 기록 중이다.
물론 날개 공격수로 ‘사이드 블로킹’에 참여하는 것과 센터로 출전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또 왼손잡이 센터는 보기 드문 존재라 세터와 속공 타이밍을 맞추는 데도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 박철우는 “상대도 왼손잡이 센터를 어색하게 느낄 수 있으니 꼭 단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우리 팀 날개 공격수들이 편하게 플레이할 수 있도록 상대 블로커들을 헷갈리게 하는 ‘미끼’ 역할도 열심히 할 것”이라며 웃었다.
박철우는 센터로 변신하면서 몸집도 키웠다. 체지방 비율은 8, 9%를 유지하면서 몸무게는 95kg에서 100kg으로 늘렸다. 박철우는 “사회복무요원 시절 100kg이 됐을 때는 점프가 안 되더니 근육량을 늘려서 그런지 요즘에는 몸이 생각보다 가볍다”고 말했다.
현대캐피탈과 삼성화재에서 뛰면서 총 6번 챔피언결정전 정상을 차지했던 박철우는 “마지막 챔프전(2013∼2014시즌) 출전이 벌써 10년이 되어 간다. 이번 시즌 팀원들과 꼭 챔프전에 진출하고 싶다. 그 과정에서 팀에 민폐 끼치지 않고 ‘센터로도 잘하네’라는 이야기를 듣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의왕=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