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법정 출석을 대선유세로 바꾼 트럼프 “당선되면 바이든 특검”

입력 | 2023-06-15 03:00:00

모금행사 열고, 지지자에 엄지척
유명식당서 사진찍으며 표심 자극
변호인 “무죄”… 팔짱 낀 트럼프 침묵
바이든은 민주당에 무대응 주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13일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연방법원 출석을 마치고 인근 쿠바 음식점을 방문해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일부 지지자들은 77번째 생일을 하루 앞둔 그에게 ‘해피 버스데이’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마이애미=AP 뉴시스


‘법원으로 가는 중. 마녀사냥!’ ‘미국 역사에서 가장 슬픈 날 중 하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13일 미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연방법원으로 이동하면서 자신이 만든 소셜미디어인 트루스소셜에 이런 글을 올렸다. 퇴임 당시 기밀문서 반출 혐의 등으로 역대 대통령 중 처음으로 기소된 그는 이날 피고인 신분으로 법원에 출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2시경 법원에 들어서며 자신을 기다리던 지지자들에게 연신 손을 흔들고 엄지를 들어 보였다. 지지자 수백 명은 경적과 함성으로 화답했다. 일부는 다음 날(14일) 77세 생일을 맞는 그를 위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그는 지지자들에게 단체 이메일을 보내 내년 대선 캠페인을 위해 1달러 이상 후원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전직 대통령의 법정 출석 현장이 사실상 내년 대선을 위한 유세장으로 바뀐 것이다.

● 법정 출석을 대선 유세로 활용한 트럼프

13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연방법원 앞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찬반 시위가 동시에 열렸다. 지지자들은 “트럼프가 옳았다”라고 쓰인 팻말(오른쪽)을, 반대자들은 “당신은 법 위에 있지 않다”라는 팻말을 각각 들고 있다. 마이애미=AP 뉴시스

CNN,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 50분경 법정에 들어선 트럼프 전 대통령은 피고인에게 기소 사유를 알리고 그에 대한 인정 여부를 묻는 ‘기소 인부(認否) 절차’ 동안 팔짱을 끼고 굳은 표정으로 말없이 앉아 있었다. 트럼프 측 토드 블랜치 변호사는 재판부에 “우리는 확실히 무죄”라고 했다. 그러면서 미 핵무기 현황과 동맹국 군사정보 등이 담긴 기밀문서 320여 건 무단 반출 등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적용된 7개 죄목, 37개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배심원 재판을 요청했다.

1시간쯤 뒤인 오후 3시 55분경 트럼프 전 대통령이 법원을 나와 찾아간 곳은 마이애미의 유명 쿠바 식당인 ‘베르사유’였다. 그곳에서 지지자들과 악수하고 사진을 찍었다. 자신을 찍는 카메라를 향해선 “우리는 조작된 국가, 부패한 나라에 살고 있다”고 했다. 미국 언론은 그가 쿠바 식당에 들른 이유에 대해 최근 인구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히스패닉 유권자의 표심을 공략하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NYT는 “트럼프는 남부 플로리다의 히스패닉계가 정적을 표적으로 삼는 정부에 익숙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동정심을 느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저녁 전용기로 뉴저지주 베드민스터에 있는 자신의 골프 리조트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10만 달러 이상 기부자들을 초청한 만찬 행사를 벌였다. 그는 연단에 올라 이번 기소에 대해 “부패한 현직 대통령이 그의 최대 정치적 경쟁자를 조작된 혐의로 체포했다. 이것은 선거 개입이자 대선 조작 시도”라며 “내년 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되면 조 바이든 대통령 뒤를 쫓을 특별검사를 임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 침묵하는 바이든… 트럼프와 본선 노리나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은 트럼프 전 대통령 기소와 관련해 언급을 삼가고 있다. 미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바이든 대통령과 그의 보좌관들은 트럼프 기소에 대해 침묵 중이며 민주당에도 무대응을 주문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가 본격화하면서 트럼프 지지층이 결집하는 현상을 바이든 대통령 측이 내심 반기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81세 고령’이 최대 약점인 바이든 대통령으로선 본선에서 세대교체론을 앞세운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45)보다 77세의 트럼프 전 대통령을 상대하는 게 더 유리하다는 것이다.

보수 진영에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가 당내 경선에선 지지층 결집의 촉매제가 될 수 있지만 본선에선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공화당 소속 폴 라이언 전 하원의장은 13일 CBS 방송에 출연해 “공화당이 트럼프가 아닌 다른 사람을 (대선 후보로) 지명하면 바이든을 이길 것”이라고 했다.

이런 가운데 질 바이든 여사는 12일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2024 대선 모금행사에 참석해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기밀문건 유출 혐의로 기소됐음에도 공화당 상당수가 그를 지지한다는 여론조사를 언급하며 “그들은 기소에는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조금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