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토대지진 100주년 기획기사서 ‘유언비어로 재일조선인 학살’ 거론 與 “요구한바 없는데 스스로 언급”
6월13일자 일본 요미우리신문 온라인 지면 1면 캡처
일본 보수 매체인 요미우리신문이 간토대지진 100주년을 석 달가량 앞두고 당시 발생했던 조선인 학살 사건을 1면에 보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 보도와 관련해 한국 정부의 한일 외교 정상화 노력에 대한 일본 정부의 화답이라고 평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간토대지진은 1923년 9월 1일 도쿄 등 일본 수도권에서 발생한 규모 7.9의 강진이다. 10만여 명이 죽거나 실종되고 29만 채 이상의 가옥이 무너지거나 불타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전까지 최악의 재해로 꼽혔다. 당시 극심한 혼란 속에 재일조선인 6000여 명이 학살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요미우리신문은 13일자 ‘간토대지진 100년 교훈’ 기획기사에서 재해 때 퍼지는 유언비어의 위험성을 언급하며 이 사건을 다뤘다. 신문은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고 우물에 독을 탔다는 유언비어를 접한 사람들이 자경단을 결성해 일본도, 도끼로 재일조선인을 닥치는 대로 폭행해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썼다.
이 보도는 일본 정부가 공식 문서로 인정한 내용을 일부 인용한 수준이다. 하지만 일본 사회에서 언급을 꺼리는 100년 전 사건을 보수 매체가 새삼 거론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일본 정부는 아베 신조 총리 시절인 2017년에 이 보고서를 정부 홈페이지에서 내렸다가 역사를 숨기려 한다는 비판을 받고 다시 게재했다. 올 3월 일본 문부과학성 심의를 통과한 일부 일본 초등학교 역사 교과서에는 관련 내용이 삭제돼 역사 왜곡 논란도 일었다.
윤 대통령은 해당 보도에 대해 “한일 외교의 정상화 과정으로, 우리 정부에 화답하는 일본 정부의 호응”이라고 평가한 것으로 14일 알려졌다. 여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일본 유력 일간지가 이 같은 보고서 내용을 1면에 보도한 것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 차원에서 (어떤 조치를) 요구한 바가 없는데도 한국 정부에 호응하기 위해 일본 언론이 스스로 이 보고서를 언급한 것”이라고 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