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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나도 그림 그려보고 싶다’는 꿈 꿨으면 좋겠어요”

입력 | 2023-06-15 10:01:00

예술의전당서 ‘백희나 그림책展’ 여는 백희나 작가




7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작업실에서 백희나 작가가 이탈리아의 대표 아동문학상인 프레미오 안데르센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알사탕’ 모형 앞에서 웃고 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10시에 퇴근하고 있어요. 첫 개인전이니 이를 악물고 중노동을 버티고 있죠. 하하.”

7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의 한 작업실. 머리를 뒤로 질끈 묶고 헐렁한 셔츠와 바지를 작업복으로 걸쳐 입은 그림책 작가 백희나(51)는 이렇게 말했다. 주위엔 ‘구름빵’ ‘장수탕 선녀님’ ‘연이와 버들 도령’ 등 그의 대표작에 등장하는 입체 모형이 가득했다. 그는 “힘들다”며 한숨을 푹푹 쉬었지만 생애 첫 개인전을 앞둔 설렘 덕인지 표정은 어느 때보다 해맑았다.

한국인 최초로 세계적 권위의 스웨덴 아동문학상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을 수상한 백 작가가 첫 개인전 ‘백희나 그림책展’을 이달 22일부터 10월 8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연다. ‘왜 개인전을 결심했냐’고 물으니 그는 “이번에 안 하면 평생 못할 것 같았다”고 멋쩍어하며 답했다.

“모형을 만들고 사진을 찍는 그림책 작업은 ‘노가다’입니다. 그래서 최대한 젊을 때 창작하고, 나이 들면 개인전을 열려고 했어요. 그런데 모형을 제가 나이 들 때까지 온전히 보관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예술의전당처럼 큰 공간에서 전시하는 기회도 흔치 않고요.”

‘달 샤베트’의 배경이 된 아파트 모형 앞에 선 백희나 작가.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개인전엔 백 작가의 11개 작품에 등장하는 약 140점의 모형이 전시된다. ‘알사탕’에서 친구들이 먼저 말 걸어 주기 바라며 구슬치기를 하는 소년의 모습은 종이인형으로 구현했다. ‘나는 개다’에서 강아지가 뛰어다니는 골목은 골판지에 색칠하고 자동차 같은 소품을 놓아 살려냈다. ‘꿈에서 맛본 똥파리’는 바닥에 조명을 설치하고, 투명한 아크릴판에 그린 그림을 올려 발밑에 올챙이와 개구리가 가득한 연못이 펼쳐진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실제 그림책 속에 들어와 있는 게 아닌가 착각할 정도다.

“키가 작은 아이들에 맞춰서 전시의 높이를 정했습니다. 아이들이 그림책 전시를 보고 ‘나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백희나 작가가 이탈리아의 대표 아동문학상인 프레미오 안데르센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알사탕’ 모형 앞에서 웃고 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지난달 27일 백 작가의 ‘알사탕’이 이탈리아의 대표 아동문학상인 프레미오 안데르센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다. 그는 “‘알사탕’의 배경이 1970, 80년대 한국인데 서양 독자가 공감했다는 점이 신기하다. 확실히 한국 그림책이 해외에서 인정받고 있는 게 느껴진다”고 했다.

백 작가는 신인 시절인 2003년 그림책 ‘구름빵’을 출간했다. 출판사 한솔교육과 2차 콘텐츠까지 모든 저작권을 넘기는 조건으로 850만 원에 ‘매절(買切)계약’을 했다. 이 때문에 지원금을 포함한 백 작가의 총수입은 고작 1850만 원에 그쳤다. 같은 처지에 처한 이의 마음을 알아서일까. 1990년대 인기 만화 ‘검정고무신’을 그린 이우영 작가가 캐릭터 업체와의 저작권 분쟁 도중 올 3월 세상을 등진 일을 언급하자 백 작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 작가가 세상을 떠났을 때 너무 가슴 아프고 힘들었어요. 이 작가는 떠나고, 나는 살아남았구나 싶었죠. 창작자를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생각하기보단 출판사와의 파트너로 인정했으면 좋겠습니다.”

‘달 샤베트’의 배경이 된 아파트 모형 앞에 선 백희나 작가.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개인전이 끝나면 그는 무슨 일을 벌일까.

“서울 용산구의 뒷골목을 배경으로 바비인형이 등장하는 유튜브 드라마를 공개할 계획이에요. 시골에 살던 여성이 서울에 상경해서 순박한 남자를 사랑하지만, 현실적 여건 때문에 부잣집 아들과 결혼하는 ‘통속 드라마’죠. 앞으로도 그림‘책’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시도를 계속할 겁니다.”

이호재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