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억류 미국인 석방 조건으로 석유대금 제재 해제 ‘미니 딜’ 논의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 AP 뉴시스
최근 미국과 이란의 핵 합의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된 가운데 양국이 지난해 말부터 핵 협상 재개와 수감자 석방 등을 놓고 물밑 협상을 이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대(對)이란 제재로 인해 한국 내에 동결된 약 70억 달러(약 8조9000억 원) 규모의 이란 석유 판매 대금 문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4일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지난해 12월 미국과 이란이 미 뉴욕에서 만나 핵 합의를 되살리기 위한 고위급 논의를 시작했으며 이후 백악관 관계자들이 제3국인 오만을 최소 3차례 방문해 추가 접촉에 나섰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NYT) 역시 이날 미국과 이란, 이스라엘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미국이 이란 핵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비공식 합의를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란은 자국에 억류된 미국인 수감자를 석방하고, 핵 프로그램을 동결하는 조건으로 미국에 해외에 발이 묶여 있는 석유 수출 대금을 지급받을 수 있도록 제재를 풀어 달라고 요구 중이다. 양측이 이런 방안을 논의하면서 한국 내 이란 석유 판매 대금 동결 문제도 연동돼 검토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 일간 카이한은 이날 이란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한국에 묶여 있는 이란 자금 문제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며 “앞으로 수 주 안에 실질적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다만 미국은 2015년 체결한 ‘이란 핵 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복원하기보다는 이란의 우라늄 농축 농도를 60% 이하로 유지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 사찰을 받는 대가로 하루 100만 배럴의 원유 수출을 허용하는 식의 ‘임시 합의’를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날 의회에 출석해 미국과 이란의 핵 협상을 ‘미니 딜’로 표현하며 “문서로 작성되는 공식 합의는 아닐 것”이라고 전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21년 취임 당시 지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 폐기된 이란 핵 합의를 복원하겠다고 했으나 지난해 11월 협상이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이 최근 이란과의 핵 협상에 다시 나선 것은 중동 지역에서 급속도로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목적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그러나 양국 간 입장 차가 여전해 합의 타결까지는 시일이 걸릴 것이란 관측도 있다. 나세르 카나니 이란 외교부 대변인은 12일 브리핑에서 미국과의 임시 합의 가능성을 부인하며 “2015년 핵 합의의 틀 안에서 제재를 푸는 것이 이란의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