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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쓰고 걱정은 나중에”…인플레 100% 아르헨 국민들이 사는 법

입력 | 2023-06-16 13:39:00


“일단 사세요. 오늘이 내일보다 저렴합니다.”
“매달 월급이 줄어든다. 월급을 받자마자 써야 한다.”

2018년부터 6년간 이어진 경제 위기 끝에 올해 초 연간 물가상승률이 100%를 넘은 아르헨티나의 이야기다.

15일(현지시간) AFP통신과 BBC 등은 높은 물가상승률에 허덕이는 아르헨티나인들이 살아남는 법을 소개했다.

아르헨티나의 지난 2월 전년 대비 물가상승률은 103%를 기록했다. 30여 년 만에 처음으로 100%를 넘은 것인데, 쉽게 말하면 많은 소비재 가격이 불과 1년 사이 두 배로 껑충 뛰었다는 것을 뜻한다.

아르헨티나는 1950년대 이후 29번이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신세를 지는 등 꾸준히 금융 위기를 겪어왔다.

특히 지난 2018년 외환 위기로 페소의 달러 대비 가치는 절반으로 떨어졌고, IMF로부터 570억 달러에 이르는 초대형 구제금융을 받았다. 당시 구제금융을 받는 대가로 정부 보조금을 삭감하고, 세금을 인상하는 등 긴축 재정을 펼치기로 했지만, 정작 선거를 앞두고 포퓰리즘 정책으로 돌아서며 경제는 다시 무너졌다.

이처럼 경제난이 길어진 탓에 아르헨티나 국민들 사이에는 ‘무이자 할부 결제’가 ‘국룰(국민룰,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규칙)’이 됐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신의 모니카는 BBC에 “나는 모든 것을 무이자 할부로 구매한다. 결제는 보통 3개월 이상에 걸쳐 이뤄진다”며 “할부로 지불할 수 없다면 구매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일례로 모니카가 지난달에 샀던 2만 페소짜리 신발 한 켤레는 다음 달 2만5000페소까지 올랐다. 돈을 열심히 모아 5000페소나 더 주고 구매하느니, 필요한 물건은 일단 할부로 산 다음 갚는 게 관행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63세의 아드리안 알바레스도 “상품을 가져간 뒤 35~40일 후에 지불한다. 오늘의 가격으로 나중에 결제한다”고 AFP에 말했다.

물가상승률이 비정상적으로 높다 보니 월급을 저축하는 것도 바보 같은 짓이다. 대다수 아르헨티나 국민은 페소보다 달러에 의존하고 있다. 월급이 들어오면 달러를 일정 금액 구매한 뒤 집에 보관하는 것을 선호한다.

23세의 호르헤는 2001년 경제 위기 때 아버지가 저축한 6만 달러가 그대로 날아가버리는 것을 목도한 뒤 집에 달러를 쌓아둔다. 불안정한 은행이 무너지면서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은행이나 공식 환전소에서 구입할 수 있는 달러의 양을 한 달에 200달러로 제한해 외화가 고갈되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

그러자 암시장에서는 달러가 기존 환율보다 훨씬 비싸게 거래됐고, 이 암시장 달러에는 ‘블루 달러’라는 이름까지 붙었다.

호르헤는 지난 4월30일 기준으로 암시장에서 1달러를 469페소(약 2400원)에 사들였다. 그는 BBC에 “달러가 페소와 달리 그 가치를 유지하기 때문에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달러를 사들일 여유조차 없다면 월급을 몽땅 쓰는 수밖에 없다. 25세의 로베르타는 BBC에 “나는 달러를 살 여유가 없고, 페소는 내 손에 있으면 가치가 떨어진다”고 말했다.

셰프로 일하는 산티아고 바사빌바소도 AFP에 “우리는 경제 문제에 매우 지쳤다”며 “사람들은 안정되지 않은 생활에 익숙하고, 월말이 되면 그저 (돈 쓰는 것을) 즐긴다”고 설명했다.

컨설팅 회사 스튜디오 SDS의 경제 분석가 살바도르 디 스테파노는 “대출 금리가 연간 최대 150%에 달해 집이나 차를 사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며 “사람들은 그 대신 돈을 쓰기를 택한다”고 전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