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일식집을 운영하는 30대 한인인 권모 씨 부부는 13일(현지 시간)에도 여느 때처럼 차를 몰고 식당으로 출근하고 있었다. 부인 권 씨는 임신 32주차로, 만삭이었다. 부부는 이날 오전 11시 15분경 시 중심부인 벨타운 지역의 한 교차로에서 신호대기를 위해 정차했다. 이제 좌회전을 해 500m만 더 가면 식당이었다.
이 때 한 정체불명의 남성이 권 씨 부부의 테슬라 차량으로 걸어왔다. 이 남성은 갑자기 총을 꺼내 운전자석 창문을 향해 총을 쐈다. 총알은 운전석에 앉아있던 임산부 권 씨의 가슴과 머리 등에 맞았다. 차량 앞에는 9mm 탄피 6발이 떨어져 있었다.
● 뱃속아기 응급 분만수술 했지만…
권 씨 부부 지인들이 사건 이후 미국 온라인 모금 사이트 ‘고펀드미’에 올린 게시글에 따르면 충알이 갑자기 차 유리창을 뚫고 들어오자 조수석에 있던 남편은 본능적으로 부인을 감싸 않았다고 한다. 총격이 멎자마자 남편은 운전석의 부인이 피를 흘리는 것을 보고 급하게 옷을 찢어 출혈 부위를 지압했다. 부인 권 씨는 곧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을 거뒀다. 남편도 부인을 감싸 안는 과정에서 팔에 총상을 입었다.권 씨 뱃속에 있던 여자아기는 응급 분만수술 직후 잠시 숨을 살아있었지만 이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권 씨의 지인들은 “(권 씨) 남편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아름다운 딸을 안고 작별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며 “나의 친구는 딸을 안아볼 기회조차 없었다”고 전했다.
권 씨 부부에게는 두 살배기 아들이 있다. 사건 당시 현장에는 없었다. 권 씨의 지인은 “권 씨는 몇 주 후 아들의 세 번째 생일을 앞두고 직접 케이크를 만들고 파티를 준비할 생각에 들떠있었다”며 “더 이상 엄마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아이는 아직 모르고 있다”고 전했다.
시애틀타임스 등에 따르면 권 씨 부부는 2018년 일식집을 열었다고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 힘든 시기를 이겨내며 성실하게 일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권 씨의 친구인 킴 라미레즈 씨는 “그들은 모두가 원하던 ‘아메리칸 드림’을 보여준 부부다. 우리의 가족과도 같았다”고 현지 언론에 전했다.
● 총격범, 권 씨 부부와 일면식도 없어
지난달 6일 미 텍사스주 댈러스의 한 쇼핑몰에서 30대 한인 부부와 3세 아들이 총기난사 사건으로 사망한데 이어 한 달여 만에 또 다시 참극이 벌어지자 한인 사회는 충격과 슬픔에 빠졌다. 15일 권 씨 부부의 식당 앞에는 이들의 비극을 추모하는 꽃다발과 편지가 가득 놓여 있었다. 한인 사회에서는 권 씨 친구들을 중심으로 유가족을 돕기 위한 모금이 시작돼 하루 만에 약 10만 달러(약 1억2700만원)가 모였다. 지인들은 한국에 있는 권 씨 부모가 미국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며 도움을 호소했다.
총격범 코델 구스비(30)는 현장에서 체포됐다. 그는 권 씨 부부와 일면식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체포될 당시 두 손을 든 채 “내가 했다, 내가 했다(I did it)”고 소리를 질렀다. 범인은 “부부의 차량 안에 총기가 보여서 쐈다”고 주장했지만 현장 폐쇄회로(CC)TV에서 확인한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경찰은 전했다.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