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무한도전 ‘코리안 돌+아이’ 콘테스트 출연을 시작으로 14년째 방송인 겸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채희선 씨. 동아일보 유튜브 <복수자들> 캡처
“크리에이터? 네가 무슨 창조주냐?”
2015년 ‘크리에이터’가 적힌 명함을 건네자 친구들이 던진 말입니다. 2009년 무한도전 ‘코리안 돌+아이’에 참가해 얼굴을 알리고 2014년 유튜브를 시작해 인기를 끈 1세대 크리에이터 ‘채채’, 채희선 씨(31)의 이야깁니다. 지금은 초등학생 장래 희망 1순위 직업이 됐지만 9년 전만 해도 크리에이터는 생소한 직업이었습니다.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되겠다는 채 씨에게 친구들은 “창조주냐”며 웃었고, 부모님은 “탤런트와 다른 거냐”고 물었습니다. 지난달 16일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에서 만난 채 씨는 “유튜브를 시작한 2014년에는 페이스북의 시대가 영원할 줄 알았다”고 회상했습니다.
꿈틀거리는 끼를 발산할 통로를 찾던 중 유튜브를 알게 됐습니다. 지상파 개그맨 공채 시험 최종 단계에서 고배를 마셨던 그는 2014년 구독자 47만 명 채널 ‘쉐어하우스’의 연기자 아르바이트로 시작해 구독자 79만 명을 보유한 코미디 채널 ‘쿠쿠크루’의 객원멤버로 활동을 넓히면서 인지도를 쌓기 시작했습니다. ‘데이트할 때 몰래 방귀 뀌는 방법’, ‘도를 아십니까 만났을 때 대처법’ 등 콩트 콘텐츠 조회수는 수백만 회에 달합니다. 이후 본인의 유튜브 채널 ‘채채’에서 ‘가슴 작으면 좋은 점’ ‘마르면 나쁜 점’ 등 고정관념을 뒤집는 ‘채고점’ 콘텐츠, 121만 구독자를 보유한 ‘딕헌터’(본명 신동훈)와 커플로 분한 ‘신채커플’ 콘텐츠를 선보이며 50만여 명의 구독자를 모았습니다.
동아일보 유튜브 <복수자들> 캡처
어렸을 때 꿈이 코미디언, 리포터, 연극배우, 쇼호스트, 레크리에이션 강사였어요. 1순위인 코미디언이 안 됐을 경우 이후 직업들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정도로 저를 표현하고 사람들을 웃기는 직업을 갖고 싶었어요. 대학에서 예체능을 전공하려면 돈이 많이 들잖아요. 무한도전 코리안 돌+아이 콘테스트는 부모님께 저를 증명할 방법이었어요. ‘우리 애한테 말도 안 되는 똘끼가 있구나’를 보여드리면 제가 예체능 전공을 하는 걸 지원해주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돌+아이 콘테스트에 나가기 위해 ‘이 사람은 돌아이가 맞습니다’라고 적힌 서류를 만들어서 교감선생님을 비롯해 100명의 선생님, 친구들 사인을 받아 제출했어요.
2009년 무한도전의 ‘코리안 돌+아이’ 출연 당시 채희선. MBC 유튜브 캡처
―유튜브는 어떻게 처음 시작하게 됐나요?
코미디언이 꿈이었기 때문에 지상파 공채 개그맨 시험을 봤어요. SBS는 최종까지 가서 떨어졌어요. 계속 불합격의 고배를 마시고 있던 중에 코미디 유튜브 채널 ‘쉐어하우스’에서 연기자 아르바이트를 해보겠냐는 제안을 받았어요. 당시 2014년은 대부분 페이스북만 하던 시대였어요. 시급 4500원을 받고 연기자 알바를 시작했죠. 이후 돌+아이 콘테스트에 함께 출연했던 딕헌터 님의 제안으로 유튜브 채널 ‘쿠쿠크루’ 객원멤버로 들어가게 됐어요. 2015년엔 제 채널 ‘채채’를 개설하면서 본격적으로 크리에이터 활동을 시작했죠.
―본격적으로 크리에이터 활동을 시작한 2015년만 해도 유튜브라는 플랫폼은 생소했어요.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되겠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다이아TV와 계약을 맺은 뒤에 지인들 모임에 나가서 ‘크리에이터’가 적힌 명함을 줬더니 다들 의아한 표정이었어요. 지금은 유명한 PD가 된 한 오빠는 “크리에이터? 너 직업이 창조주야?”라며 웃었어요. 그 정도로 생소한 직업이었던 거죠. 부모님도 처음엔 제 직업을 잘 이해하지 못하셨어요. 제가 크리에이터를 한다고 하니 “탤런트 비슷한 거냐”고 물으셨어요. 부모님이 친구들에게 제 직업을 설명하려고 해도 휴대폰에 유튜브가 안 깔려 있어서 소개 못 하신 적도 많았대요.
콩트 유튜브 ‘쉐어하우스’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대처법’ 시리즈. 채희선이 연기자로 활약했다. 유튜브 쉐어하우스 캡처
―인기를 끌었던 ‘채고점’ 콘텐츠에서는 ‘가슴 작으면 좋은 법’ ‘키 작으면 좋은 법’처럼 콤플렉스일 수도 있는 점을 유쾌하게 콘텐츠화했고, 치질수술 과정까지 자세하게 공개했어요. 본인을 내려놔야 하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나요?
전 제가 웃길 때가 가장 예쁜 것 같아요. 스스로 매력적이고 사랑스럽게 느껴질 때가 망가지고 웃기는 순간이라 ‘현타’가 온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또라이다” “미쳤다”는 소리를 듣고, 남들이 자신을 보며 웃을 때 가장 행복하다는 채희선 씨. 동아일보 유튜브 <복수자들> 캡처
―구독자가 53만 명까지 늘면서 가장 인기 있는 1세대 유튜버로 활발하게 활동하셨는데, 2021년부터 활동이 뜸해졌어요. 작년에는 영상이 10개밖에 안 올라왔더라고요.
2021년부터 건강이 악화됐어요. 기립성 빈맥증후군, 자율신경실조증 두 가지가 한 번에 왔어요. 병명을 몰라서 병원도 많이 다녔고요. 그 병의 증상은 어지럽고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이 하루 종일 지속되는 거예요. 그 증상이 1년 반 동안 지속돼서 일상생활이 안 될 정도였어요. 그때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논문 한 줄을 읽고 쉰 뒤에 다시 한 줄을 읽어야 했어요. 라이브 커머스 쇼호스트 활동도 하고 있었는데 멘트를 외울 수가 없어서 진행도 할 수 없었습니다.
―갑자기 두 가지 병이 동시에 찾아온 건가요?
살다 보면 감당을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감당을 할 수 없는 일이 있잖아요. 예를 들어 내가 토익점수를 400점에서 750점으로 올리겠다거나, 구독자 수를 40만 명에서 50만 명으로 올리겠다는 건 제가 감당할 수 있고, 노력으로 극복이 가능한 문제예요. 당시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일이 닥쳤어요. 내 노력으로 해결이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하니 몸이 아프더라고요. 그때 받았던 스트레스가 병의 원인이 된 것 같아요.
매일 일을 시작할 때 ‘이 사람들 다 웃겨줘야겠다’는 다짐을 한다는 채희선 씨. 동아일보 유튜브 <복수자들> 캡처
내 능력 밖의 문제라면 그와 관련된 걱정과 생각을 바로 끊어내세요. 스트레스를 최대한 안 받으려고 하는 거죠. 저는 다른 일에 집중을 정말 많이 하려고 노력해요. 잡생각이 들지 않도록 하루를 진이 빠지게 사는 거죠. 예를 들어 방송을 할 때 ‘오늘 하루 진짜 이 악물고 이 사람들 다 웃겨주겠다’는 마음으로 임해요. 대학원 공부를 할 때는 타이머를 재요. ‘오늘 하루 13시간 앉아있는다’ 라고 스스로와 약속을 하고요. 남들 눈에는 스스로를 혹사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제게는 그게 집중의 방법입니다. 제가 어떤 일에 몰입하고 집중을 하면 제 뒤에 있는 그림자들이 안 보이더라고요.
혼잣말을 많이 해요. 매일 어떤 생각들을 하는데 그 생각을 10번 이상 스스로한테 외쳐요. 예를 들어 오늘은 길을 걸어가면서 ‘도태되지 말자’를 열 번 반복해서 스스로에게 말했어요.
제가 블로그에도 쓴 말인데요, ‘결국 끝까지 남아 성공한 사람들은 오래 버틴 사람이다’라는 말을 요즘 계속 새기려 해요. 현실이 버거울 때마다 생각해요.
다른 유튜버들이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새로운 콘텐츠를 창작하고 싶다는 채희선 씨. 동아일보 유튜브 <복수자들> 캡처
―작년부터 유튜브 채널 ‘채새댁’을 시작하셨고, 여전히 43만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채채’에도 본격적으로 영상을 올리시고 있어요. 반응이 예전만 하진 못한데 크리에이터로서의 고민은 없으신가요?
트렌드를 만들 수 없다면 트렌드를 따라가기라도 해야 해요. 요즘 ‘렉카’ 콘텐츠가 인기잖아요. 그래서 2개월 전 ‘채채, 당신이 몰랐던 10가지 사실’이라는 렉카 컨셉의 영상을 올렸던 거예요. 트렌드를 따라가야 조금이라도 대중의 취향을 파악할 수 있겠죠. 근데 전 저만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욕구가 커요. 남들과 똑같은 걸 만들고 싶진 않아요. 남들이 안 했는데 진짜 웃긴 걸 만들고 싶어요. ‘진짜 미쳤다’, ‘진짜 또라이다’ 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요.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분들 정말 많잖아요. 요즘 초등학생들의 장래희망 1순위가 유튜버일 정도예요. 이들에게 해 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요.
‘한 방에 훅 갈 수 있다’, 이 말을 꼭 기억해야 돼요. 새로운 캐릭터와 콘셉트의 유튜버들은 계속해서 생겨나고, 유튜브가 밀어주는 특정 알고리즘에서 벗어나면 뜻하지 않게 인기가 식을 수도 있어요. 결국 개인의 브랜드를 탄탄히 다져놔야 합니다. 그래야 유튜브의 트렌드에서 좀 뒤처지게 되더라도 개인 브랜드를 지지하는 팬들의 힘으로 계속 콘텐츠를 만들 수 있어요.
크리에이터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는 채희선 씨. 동아일보 유튜브 <복수자들> 캡처
수익과 인기는 필연적으로 등락이 있어요. 월수입 격차가 크게는 10배까지 나요. 수익이 적은 달에는 의기소침해지고, 많이 번 달에는 ‘장난 아닌데?’ 싶을 때도 있죠. 하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은 제가 이 일에 갖는 애정이에요. 사람들마다 가장 잘하는 일들이 있잖아요. 고등학교 때부터 느꼈는데 저는 수학이나 과학을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거든요. 근데 말하는 것이나, 친구들 웃기는 건 전교 1등이었어요. 저는 이 일을 선택한 걸 후회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전 제가 웃길 때보다 남들이 절 보고 웃을 때 훨씬 더 행복한 사람이에요. 앞으로도 계속 그 행복을 추구해 나갈 겁니다.
복수자들영화 ‘올드보이’ 속 오대수가 15년간 군만두만 먹으며 칼을 갈았던 복수? 아닙니다. ‘킬빌’의 블랙맘바가 자신을 죽이려 한 보스를 처단하는 복수? 그것도 아닙니다. ‘복수자들’은 복수(複數)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한 가지 일만 하고 살기엔 지루하다고요?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겠다고요? 본캐와 부캐, 양쪽을 오가는 복수자들이 직접 도전과 병행의 노하우를 전해드립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