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 석유 의존 국가 경제 탈바꿈 의지… 한국과도 37조 원 프로젝트 추진 부패 혐의 씌워 사촌형 몰아내고, 반대파 인권운동가 탄압 이면도 ◇빈 살만의 두 얼굴/브래들리 호프, 저스틴 셱 지음·박광호 옮김/484쪽·2만5000원·오픈하우스
지난해 11월 방한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왼쪽)가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걸어가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스1
“당장 오십시오.”
2017년 11월 4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족, 장관, 군부대 사령관 등 핵심 인물 200여 명은 왕실의 전화를 받았다. 국왕이 수도 리야드의 리츠칼튼호텔로 집합하라고 명령을 내린 것이다. 호텔에 모인 이들은 즉각 구금됐다. 이들은 거액을 헌납하고 충성 서약을 하고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고문, 구타, 협박을 당했다는 이도 있었다. 이 무시무시한 작업을 이끈 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란 뜻의 ‘미스터 에브리싱’으로 불리는 사우디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자 2명이 빈 살만을 추적한 논픽션이다. 저자들은 해외에 잠시 나와 감시를 피한 사우디 관계자들을 2017년부터 극비리에 취재했다. 빈 살만은 지난해 11월 윤석열 대통령을 만나 한국과 26개 사업에 290억 달러(약 37조 원)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한 인물이다. 38세 젊은 왕세자의 진면목에 한국 독자도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빈 살만이 본격적으로 사우디 정치에 등장한 건 불과 26세 때인 2011년이다. 아버지가 국방부 장관에 취임하면서 그는 특별보좌관이 된다. 아버지가 왕세자가 될 땐 궁정실장에 취임했다. 2015년 당시 국왕이던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아버지가 국왕이 되자 그는 실권을 차지한다.
그는 아버지의 셋째 부인이 낳은 아들이다. 위로 배다른 형제가 여럿이다. 아버지 역시 첫째가 아니라서 할아버지는 원래 왕세자로 사촌 형 빈 나예프를 낙점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빈 나예프에게 부패 혐의를 뒤집어씌워 2017년 물러나게 했다. 이후 사우디에서 금지됐던 미혼 남녀의 교제, 영화관 출입을 허용하며 젊은 층의 인기를 얻었다.
왕세자가 된 빈 살만은 거침이 없었다. 회의에서 반대 의견이 나오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하기 일쑤였다. 위협이 될 만한 인물에겐 돈을 뿌리거나 협박해 아버지 편으로 포섭했다. 롤 모델이 이탈리아 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라고 말하곤 했다. 아버지는 빈 살만을 총애했다.
서열이 중요한 왕국에서, 적자생존의 권력투쟁에서 빈 살만의 잔혹한 행동은 어쩌면 그 자신에게는 당연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가 권력을 쥐면서 사우디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점도 있다. 그는 ‘비전2030’이란 경제 정책을 발표해 오일 달러에 의존한 기존 사우디 경제를 탈바꿈시키려 한다.
사우디 국왕 살만 빈 압둘아지즈가 88세로 고령인 만큼 빈 살만의 집권은 코앞으로 다가왔다. 빈 살만은 사우디의 경제 부흥을 이끄는 젊은 지도자가 될까, 아니면 무자비한 독재자가 될까. 두 얼굴 속에 숨겨진 진실을 그가 언제 드러낼지 궁금하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