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 몰락하면 기초학문, 국가경쟁력도 위기 벳푸시, 말뫼시 등 지역과 대학 상생 사례 주목 지자체장, 총장 연석회의 먼저 시작하자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서울시 교육명예시장
2021년 기준, 전국 229개 시군구 가운데 89곳이 인구감소지역이다. 대부분 지방 중소도시이고, 전체 국토의 59.4%다. 더 큰 문제는 청년층 유출과 무활력(無活力)이다. 지역 소멸은 그들만의 일이 아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은 효율적 국토 활용과 경제 활력을 낮추고 지역 갈등을 키운다. 미래 세대가 짊어질 비용이다.
우리나라에는 4년제 대학이 190개 있다. 119개 대학이 지방에 있고 전체의 63%다. 이처럼 지역 인재 양성과 연구개발을 책임졌던 지방대가 몰락 직전이다. 학생 감소와 수도권 집중이라는 쓰나미 때문이다. 지방대가 문 닫으면 수도권 대학도 어려워진다. 교수를 키우는 대학원이 부실해지기 때문이다. 이는 다시 기초학문과 기초과학 약화를 불러온다. 지방대 위기는 곧 국가 경쟁력 위기다.
나라 절반이 도시와 대학의 동반 쇠락이라는 이중 고통을 겪고 있다. 본래 대학과 도시는 상리공생(相利共生) 관계다. 대학은 지역을 이끌 지도자와 지역에서 일할 사람을 양성하는 허브다. 지역 지식인, 예술가, 과학자들이 활동하는 무대이고, 지역 혁신가를 배출하는 인큐베이터다. 무엇보다 대학은 청년이 꿈을 키우는 터전이고, 지역 이탈을 막는 ‘댐’이다.
우리는 못 하랴. 정부도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 사업(RISE 사업)’과 ‘글로컬 대학 사업’을 내놨다. 한국판 벳푸와 말뫼의 기적을 만들자는 것이다. 성공 요인을 짚어 본다.
첫째, ‘절실’해야 한다. 절실한 대학은 몇몇 교수가 모여 ‘보기 좋은 계획서’를 만드는 데 시간을 쓰지 않는다. 전체 구성원에게 대학 상황을 알리고, 합심(合心)과 참여를 끌어내려 노력한다. 총장부터 기득권을 내려놓고 지자체든 기업이든 먼저 찾아 나선다. 캠퍼스 울타리도 낮춘다. 학생 성공과 지역 기여가 생존의 열쇠임을 알기 때문이다.
둘째, 사업 수주가 아닌 ‘전략과 체질 전환’이 목표여야 한다. 사업이 끝나면 과거로 돌아가는 대학이 많다. 사업비로 몇 년 버티는 게 목표인가. 총장이 바뀌어도 유지되는 모델을 만들 것인가. 지속 가능 대학을 만들려면 대학 여건, 비교우위, 특성화 전략을 심층 분석하고, 긴 안목에서 비전을 만들어야 한다. 정부 지표를 무작정 따르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 몸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지자체도 마찬가지다. 민선 시장, 군수는 선거를 위해 단기 성과를 원하고, 시간 걸리는 일은 피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토론토 사례는 대학을 통해 인재를 길러내고 기술을 개발하면 기업과 일자리가 따라옴을 보여준다. 벳푸와 말뫼를 보라. 군산에서 조선업이 살아나고, 광주가 인공지능 도시가 되려면 시간이 걸려도 인재를 키우는 대학과 협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담대한 꿈이 글로컬 대학을 만든다. 그간 대학은 정부에 길들여져 미래를 그리는 능력을 잃었다. 지적 우월감과 넘치는 학생은 ‘방관적 상아탑’을 만들고, 혁신의 눈을 가렸다. 꿈 없는 ‘모범 대학’은 글로컬 대학이 되기 어렵다. 활동의 무대를 세계로 넓히고, 다양한 파트너와 협력하는 ‘튀는 대학’이 돼야 한다. 그럴 때 세계에서 찾아오는 명문 대학이 된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서울시 교육명예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