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현안 질의를 기다리고 있는 김규현 국정원장. 사진공동취재단
윤석열 대통령이 재가했던 국가정보원 1급 인사 번복 파장이 커지고 있다. 윤 대통령이 인사를 철회한 건 해외파트 핵심 요직인 주미 대사관과 주일 대사관의 정무2공사에 김규현 국정원장의 측근 A 씨와 함께 근무했던 국내 정치과 출신들이 임명되는 등 A 씨가 인사에 과도하게 개입한 정황을 확인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업무 국장급(1급) 자리에도 A 씨의 입직 동기가 초특급 승진으로 올랐다고 한다.
A 씨가 단순히 자신과 연(緣)이 있는 사람들을 원장에게 추천한 정도를 넘어 그들이 논란의 소지가 있는 인물들이라 문제가 된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능라도 경기장 연설의 국정원 버전을 써준 사람과 박근혜 정부에서 당시 원장을 건너뛰고 우병우 대통령민정수석에게 직보했다는 의혹을 받은 사람이 포함됐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 직후 문 정부에서 임명된 1급 간부를 전원 대기 발령한 뒤 1급뿐만 아니라 2, 3급까지 대거 교체했다. 그런데도 ‘대통령 재가 뒤 번복’이란 사태가 빚어지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전 정권에서 중용된 간부들을 다 솎아내고도 외부에서 온 외교관 출신 국정원장이 통제하기 힘들 정도로 내부 관계가 복잡하거나 전 정권에서 중용된 간부들이 철저히 물갈이되지 않았다고 보는 강경파가 국정원을 흔들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 팻말에도 쓰여 있듯 국정의 책임은 궁극적으로 대통령이 진다. 마찬가지로 각 부서의 책임은 부서의 장(長)이 진다. 국정원이 대통령에게 잘못된 인사안을 올렸다면 그 책임자는 A 씨가 아니라 원장이다. 인사를 문제 삼고자 한다면 원장을 건너뛰고 번복할 게 아니라 원장의 책임부터 묻고 번복해도 번복해야 한다. 이 순서가 뒤바뀌어 있으니 조상준 사직 사태 때처럼 갈수록 억측만 쌓여가고 국민들은 국정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어리둥절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