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타공인 롤 최고 지도자 인정받는 김 감독 “선수 향한 관심이 호성적으로 이어져” 선수 시절 우승 못 해봐 아쉬움 남았지만 지도자로 우승 향해 달리는 원동력 돼 “AG 대표 6인은 각 포지션 최정상 사명감으로 반드시 금메달 가져올 것”
한국e스포츠협회는 9월 예정된 2023 항저우 아시아경기를 앞둔 3월 ‘리그 오브 레전드’(롤) 사령탑에 ‘꼬마’ 김정균 국가대표 감독(38)을 선임했다. 한국 대표팀은 롤이 시범 종목이던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당시 결승에서 중국 대표팀에 세트 스코어 1-3으로 무너지며 준우승에 그쳤다. 롤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이번 대회에서 김 감독과 한국 대표팀은 ‘아시아경기 초대 챔피언’ 자리에 도전한다.
김정균 ‘리그 오브 레전드’(롤) 국가대표 감독이 12일 서울 마포구 한국e스포츠협회 명예의 전당에서 9월 예정된 2023 항저우 아시아경기 우승을 다짐하며 손으로 숫자 ‘1’을 만들어 보이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김 감독은 경기 지도력과 분석력뿐 아니라 선수의 기량을 알아보는 안목도 탁월하다. 현시점 롤 ‘레전드’로 통하는 선수 이상혁을 발굴한 지도자가 김 감독이다. 이번 아시아경기를 앞두고 김 감독이 협회와 논의를 통해 선발한 국가대표 선수들 역시 ‘세계 최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포지션별로 △톱 ‘제우스’ 최우제(19·T1) △정글 ‘카나비’ 서진혁(23·JDG) △미드 이상혁, ‘쵸비’ 정지훈(22·젠지) △원거리 딜러 ‘룰러’ 박재혁(25·JDG) △서포터 ‘케리아’ 류민석(21·T1) 등 6명이 최종 국가대표 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김정균 ‘리그 오브 레전드’(롤) 국가대표 감독이 12일 서울 마포구 한국e스포츠협회 명예의 전당 태극기 배경 앞에서 9월 예정된 2023 항저우 아시아경기 우승 각오를 다지며 헤드셋 마이크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 캐릭터는 다중노출 기법으로 삽입된 롤 챔피언들의 모습.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다음은 12일 서울 마포구 한국e스포츠협회 명예의 전당에서 김 감독과 나눈 일문일답.
―지금은 ‘롤 명장’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김 감독에게도 선수 시절이 있었다. 과거 e스포츠 선수로 진로를 정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어렸을 때 게임을 좋아하고 또 잘했다. 그때 유행하던 스타크래프트와 워크래프트에 재능이 있었고, 특히 MOBA(Multiplayer Online Battle Arena·여러 플레이어가 가상의 무대에 동시에 참여해 온라인 전투를 벌이는 게임의 한 종류) 장르의 ‘카오스’라는 게임을 잘했다. 같은 유형의 게임인 롤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카오스를 잘했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내가 10대일 때만 해도 게임에 대한 인식이 매우 좋지 않았다. 집안에서 게임 선수가 되는 걸 직접적으로 반대한 건 아니었지만, 부모님이 내가 게임을 하는 걸 싫어한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부모님 눈치를 보다 25세라는 늦은 나이가 돼서야 선수에 도전하게 됐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선수 생활이었는데 그 커리어가 길지는 않았다.
“프로 게이머는 통상 10대의 어린 나이에 시작한다. 내가 선수 생활을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다는 걸 잘 알았기 때문에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훈련에 매진했다. 어느 순간 ‘더하면 죽겠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오후 1시쯤 일어나서 다음 날 오전 4시까지 훈련만 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이에 대한 부담이 커졌고, 결국 선수 생활을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선수 시절부터 지금까지 닉네임 ‘꼬마(kkOma)’를 써오고 있다. 과거 이런 닉네임을 정하게 된 배경은 무엇이었나.
“중학생 때 게임에 등록할 이메일 주소를 만드는데 그때 내 키가 작아서 그렇게 지었다. 반에서 키를 재면 거의 항상 앞번호였다. 그때 먹는 걸 참 싫어했는데 지금 청소년들에게는 밥을 잘 먹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웃음) 닉네임 만들 때는 별생각 없이 만들었는데 지금 보니 멋이 없는 것 같아 가끔 후회될 때도 있다.”
“코치든 감독이든 선수와 마찬가지로 ‘프로’이기 때문에 내가 대우를 받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성적을 내는 게 가장 큰 임무라고 생각했다. 물론 성적 스트레스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좋은 성적을 내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연승하고 있을 때는 한 번이라도 삐끗하면 ‘나락’, ‘퇴물’ 소리를 듣곤 했기 때문에 부담이 더 커지곤 했다.”
―롤 지도자로서 평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점은 무엇인가.
“게임 전략적으로 조언을 주는 것뿐 아니라 선수마다 말 못 할 어려움이 있으면 먼저 생각해서 그 고민을 풀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선수들에게 정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선수 개개인에 대해 알아가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게임 운영과 멘탈 관리는 하나로 이어져 있다. 선수 개개인의 사정을 잘 알고 있어야 경기 상황 중 튀어나오는 각 선수의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이 두 가지를 잘 챙기다 보면 ‘어떤 선수는 어떻게 해줘야 더 발전할 수 있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쌓이게 된다. 내가 아무리 많은 우승을 일궜어도 결국 대회를 우승으로 이끌어가는 주체는 선수들 자신이다. 나는 선수들이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려 노력했다.”
―선수들을 대하는 마음이 유독 각별한 것 같다.
“내가 선수 시절 겪은 아쉬움이 커서 그런 듯하다. 정말 최선을 다했는데 우승 한 번 해보지 못한 게 지금도 마음에 남아있다. 지도자로 전향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을 이끌게 되면 반드시 우승을 선물해주자’는 목표를 세웠다.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하면 못 할 일이 없다’는 희망을 나는 가져보지 못했지만 선수들에게는 주고 싶었다. 그래서 지도자로서 더 노력하게 되고, 선수들을 향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커진 것 같다.”
―지도자 커리어 중 힘들었던 시기를 하나만 꼽아본다면.
“T1 코치 소속이던 2015시즌이 떠오른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그 시기는 내 황금기 중 하나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성적이 좋았을 때다. LCK 스프링(5월), 서머(8월)와 국제 최대 롤 대회인 ‘월드 챔피언십’(월즈) 등 3개 메이저 대회에서 T1의 우승을 이끌었다. 승리가 너무나 당연하고, 패배하는 날은 ‘이상하다’고 표현할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다. 하지만 반대로 나는 그때 패배에 대한 압박이 가장이 크게 다가왔다. 선수들 앞에서는 최대한 좋은 표정을 하고 감정을 숨기려 노력했지만 집에 돌아와 혼자 있는 시간이 되면 나도 모르게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오는 ‘틱 장애(투레트증후군)’ 증세를 한동안 겪기도 했다.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스크림(연습경기)을 할 때 과정이나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을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불안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선수들도 힘들 텐데 내 감정까지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아 혼자 속앓이를 하다 보니 생긴 일시적 증세였던 것 같다. 내 취미가 레고인데 레고를 자주 하게 된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뭘 해도 자꾸만 일 생각이 떠올라 괴로웠는데 레고에 집중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다.”
―대회를 치를 때면 수첩을 항상 들고 뭘 기록한 뒤 세트가 끝날 때마다 경기장에 올라가 지시를 내리곤 한다.
“나는 경기 현황을 분 단위로 체크하며 수첩에 피드백해야 할 점을 정리한다. 롤은 팀 게임이라 한 팀원이 자신의 위치를 지키지 않으면 실수하지 않은 다른 팀원이 피해를 보기도 한다. 경기를 지켜보는 관중들은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A 선수가 한 번 데스(Death)했을 때 그 원인은 A 선수에게 있지 않은 경우가 있다. 이때 경기 후 기록은 A 선수의 데스로 남겠지만, 다른 라인에서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상대에 대한 압박을 풀어버린 B 선수의 잘못이 A 선수 데스에 영향을 미친 걸 수 있다는 얘기다. 누가 무엇을 잘못해서 졌는지 알려줘야 A 선수가 그릇된 이유로 자책하는 일을 피할 수 있고, B 선수도 다음 경기에서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게 된다. 이런 과정이 있었기에 한 번이라도 더 많이 승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당시 중국 대표팀은 5명의 주전 선수 중 4명이 같은 롤 프로팀 소속이었고, 1명 만이 다른 팀 선수였다. 당시 시범 종목으로 채택돼 급하게 치른 대회인 만큼 짧은 시간 안에 국가대표 선수끼리 ‘원 팀’으로 호흡을 맞추는 데 중국 팀이 훨씬 유리한 환경이었다고 본다. 아직 이번 대회 중국 대표팀의 최종 명단이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후보 선수들 구성을 살펴봐도 2018년 대회 같은 상황은 오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이번 LCK 스프링도 평소보다 일찍 시작한 만큼 한국 대표팀이 아시아경기 전 호흡을 맞출 시간도 많다. 2018년과는 다른 결과를 낼 수 있다.”
―최근 롤 국제 대회인 미드시즌인비테이셔널(MSI)에서 한국 프로팀 성적이 좋지 않았다. 한국 팀이 중국 선수로만 구성된 팀에 패배하기도 했다. 아시아경기를 앞두고 중국 대표팀을 상대해야 하는 현시점에 좋은 신호로 보이지는 않는데.
“나는 중국 프로팀에서 감독직을 맡아보기도 했고, 국제대회에서 중국 선수로만 구성된 팀을 상대해본 적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 선수들이나 팀의 성향에 대해서도 남들보다 많이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 선수들은 큰 대회에서 떨지 않고, 매우 공격적으로 행동한다. 한국의 경우 데이터에 근거해 특정 결과가 예상되는 안정적인 액션을 자주 취하는데 이와 대조적이다. 이런 중국 선수들의 경기 운영 방식을 감안해 전략을 세우고 있다.”
―이번 아시아경기 목표는 어떻게 설정했나.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이번 한국 국가대표 선수 6명은 모두 각자의 포지션에서 국내뿐 아니라 세계 최정상에 있는 선수들로 발탁했다. 국가대표에 선발된 선수들 모두 태극마크를 달았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면 좋겠다. LCK 스프링 대회가 진행 중이라 아직 선수단 상견례는 하지 못했는데, 국가대표에 뽑힌 각 선수에게 ‘여러분이 자신의 포지션에서 세계 최고’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주고 싶다. 이 멤버라면 항저우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물론 중국도 강팀이기 때문에 절대 방심하지 않겠다.”
―아시아경기 주전은 5명인데 국가대표 최종 멤버는 6명을 뽑았다. 중복 포지션인 미드에 이상혁과 정지훈 중 한 명은 예비 엔트리가 될 것 같은데.
“조심스러운 주제다. 한 가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누구를 주전으로 하고 누구를 예비 선수로 할지 정해놓고 뽑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아시아경기 때 컨디션이 더 좋은 선수에게 주전을 맡길 생각이다.”
―이번 아시아경기 국가대표 6명 중 가장 기대가 되는 선수를 꼽아본다면?
“(최)우제가 대회 결승 등 큰 경기에서 미끄러지는 경우가 많아 일각에서는 ‘큰 대회에 약하다’는 평가도 나오는 걸로 안다. 하지만 우제의 경기력은 계속해서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고, 꾸준히 잘하던 선수가 한두 번 못했던 경기가 하필 결승이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확률로 따지면 우제가 이번 아시아경기에서 잘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 우제가 데뷔했을 때부터 꾸준히 봐왔는데 이번 아시아경기에서 어떤 활약을 할지 기대가 된다.”
―마지막으로 아시아경기에 임하는 각오 한 말씀 부탁드린다.
“롤이 정식 종목으로 처음 채택된 이번 아시아경기에서 국가대표 감독을 맡는다는 게 처음에는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감독직 수락을 놓고 고민도 많이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국 국가대표 감독을 맡게 된 이유를 설명하라고 한다면 사명감 말고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을 것 같다. 내게는 ‘한국이 반드시 아시아경기 롤 초대 챔피언이 돼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롤 팬 여러분들이 우리 한국 대표팀을 응원해주신다면 큰 힘이 될 것 같다. 저도 최선을 다하겠다.”
‘리그 오브 레전드’(롤)는…2023 항저우 아시아경기에서 처음 정식 종목에 채택된 e스포츠 7개 종목 중 하나다. 톱, 정글, 미드, 원거리 딜러, 서포터 등 5개 포지션이 한 팀을 이뤄 상대 팀과 전투를 치르는 게임이다. 한국이 이번 대회에서 국가대표를 파견하는 롤, 피파온라인4,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스트리트 파이터5 등 4개 e스포츠 종목 중 우승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 롤 대표팀이 이번 대회 정상에 오르면 ‘아시아경기 초대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쥐게 된다.
강동웅 기자 lep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