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혁재 미래에셋 수석위원 “새 변수 출현으로 매매가·전세가 상승”
허혁재 미래에셋증권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박해윤 기자]
최근 서울을 비롯한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매매가가 오르고 거래량이 증가하면서 집값이 바닥을 지나 다시 상승하고 있다는 전망에 힘이 실리는 상황이다. 허혁재 미래에셋증권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이런 변화와 관련해 “앞으로 심화될 역전세난 때문에 집값 추가 하락을 예상하고 있었는데, ‘빌라 전세사기’라는 돌발 변수가 등장하면서 시장이 예상과 다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일시적 반등’인지, ‘대세 상승’인지 알 수 없다
허 수석전문위원은 부동산114를 거쳐 건국대 부동산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단국대 도시계획 및 부동산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전문가다. 현재 미래에셋증권 VIP 고객 및 법인고객에게 부동산과 관련된 최적의 맞춤식 솔루션을 제공하고, MBC 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와 경제 유튜브 ‘삼프로TV’ 등에서 부동산시장 동향에 관한 인사이트를 전하고 있다. 최근에는 초심자를 위한 부동산 입문서 ‘부동산 공화국 생존지식’을 펴냈다.현 부동산시장을 어떻게 봐야 하나.
“집값을 전망할 때 시장의 큰 흐름, 사이클을 읽는다는 측면에서 거래량을 함께 보라는 말이 있다. 거래량과 가격의 상관관계를 설명하는 이론 중 가장 유명한 ‘벌집순환모형’에 따르면 현재는 침체기(거래량↓ 가격↓)에서 불황기(거래량↑ 가격↓)로 진입하는 국면이다(도표 참조). 서울 아파트 기준 지난해 하반기 월 682건이던 거래량이 올해 들어 4월까지 월 2500건으로 3.7배 증가한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침체기에 주로 나오는 말은 거래절벽, 미분양 증가, 역전세난이다. 불황기에는 매매가 하락, 전세가 횡보 등 특징을 보인다. 그런데 최근 그동안 낙폭이 컸던 지역이나 단지를 중심으로 매매가 반등, 전세가 상승이 일어나면서 불황기로 접어드는 것이 아니라, 1997년 외환위기 때처럼 바로 브이(V) 자 상승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집값이 긴 시간에 걸쳐 조정받을 것으로 예상됐는데.
“지금까지 부동산시장이 그런 식으로 조정받은 적이 두 차례 있었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다. 그런데 지금 과거에는 없던 변수가 생겨났다. 바로 ‘빌라 전세 사기’다. 사기 사건에 충격을 받은 젊은 세대가 빌라 탈출을 꿈꾸면서 아파트 전세, 청약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그러다 보니 아파트 전세가가 오르고 있다. 더욱이 과거에는 미분양 물량이 엄청났는데, 지금은 건설사들이 분양을 미루면서 분양 물량 자체가 적어 미분양 물량도 많지 않다. 상황이 이러니 사람들이 집값이 오르네, 미분양 물량도 별로 없네, 전세가율도 떨어지지 않네 하면서 집값 상승에 다시 베팅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제 집값이 다시 오르는 것인가.
“한국만 놓고 보면 지금 집값이 상승세인 것을 부정할 수 없고, 더욱이 금리가 더는 올라가지 않는다면 현재로서는 크게 떨어질 변수가 별로 없다. 다만 현 부동산시장 위기가 지난해 미국의 급격한 금리인상에서 시작됐는데, 지금까지 경험으로 봤을 때 국내 위기가 아닌 국제적 위기는 경기침체나 신용경색 같은 또 다른 위기 없이 한 번에 봉합된 적이 없다. 또 부동산시장 향방을 예측하는 데 참고가 되는 KB부동산 매매가격지수가 최근 마이너스로 바뀌었다. 시장보다 선행하는 KB부동산 매매가격지수의 마이너스 전환도 의미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역전세와 다주택자 매물 나오면 집값 하락
부동산 가격 추가 하락을 예측하는 근거는 무엇인가.“첫 번째는 역전세다. 집값은 2021년 10월이 최고점이었다. 매매가도, 전세가도 그때가 가장 비쌌다. 그런데 2년 동안 집값이 많이 빠져 전세 재계약 시점인 올해 10월에는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할 계약금이 많을 수밖에 없다. 기존에는 이런 경우 집주인이 돌려주지 못하는 차액 보증금에 대해 월세를 제안했는데, 빌라 전세사기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는 세입자가 그런 조건을 거절하고 있다. 이때 임대인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집을 파는 것이고, 그런 물량이 많이 나오면 가격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얼마 전 이런 판단에도 변수가 생겼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역전세난과 관련해 전세금 반환 목적에 한해 한시적으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완화 방안을 검토 중이며, 늦어도 7월에는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말했다. 만약 이것이 현실화된다면 매물이 별로 안 나오면서 오히려 상승세가 더 지속될 수 있다.”
정부 정책이 부동산시장 방향을 바꿀 수도 있겠다.
“그런 셈이다. 역전세 외에 집값 하락에 영향을 미칠 요인이 하나 더 있는데, 내년 5월 9일까지 한시적으로 시행되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다. 이것이 지금 강남 3구와 용산구 집값이 안 떨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만약 정부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를 부활한다면 매물이 엄청나게 나오겠지만 유예 지속 등을 결정한다면 시장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추가 하락을 기다리며 주택 매입 시기를 미뤄선 안 된다는 말로 들리기도 하는데.
“앞서 말한 대로 역전세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같은 예견된 요인은 정부 정책으로 커버가 가능하다. 그럼에도 나는 예견되지 않은 국외 이슈, 이를테면 신용경색이나 디폴트(채무불이행) 등이 발생해 추가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사실 부동산시장을 전망하는 것은 조심스럽다. 집값이 오르기를 바라는 사람과 떨어지기를 바라는 사람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한때 인구론을 내세워 한국도 일본처럼 집값이 폭락할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현실은 다르지 않았나.”
정부 정책이 부동산 방향 바꿀 수도
지역별·단지별 집값 상승폭이 달라지면서 아파트 선택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것 같은데.
“시큐리티(보안), 커뮤니티, 정원을 갖춘 대단지 아파트는 가격이 오를 때 더 많이 오르고 팔기도 쉽다. 흔히 사람들이 교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런 곳에는 나 홀로 아파트(주상복합 아파트)가 많다. 상업지에 자리한 아파트는 단지 형성이 안 되고 학교도 멀어 아무리 교통이 좋아도 가격이 안 오른다. 물론 교통도 중요하다. 강북에서 마포구가 뜨는 것도 직주근접이 가능해서다. 이런 곳들은 앞으로도 계속 좋아질 가능성이 크다. 집값이 고평가됐는지, 저평가됐는지 판단이 어려울 때는 여러 지역을 놓고 비교해보면 된다. 예를 들어 경기 과천시 집값이 마포구보다 비싸다고 하면 어떤 생각이 드나. 이렇게 판단해가면 앞으로 어디가 더 오를지 알 수 있다.”
집값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무엇인가.
“경제성장률, 수요와 공급, 정부 정책, 물가, 금리 등 많은 요인이 꼽히지만 나는 광의통화(M2)라고 본다. 중단기적으로는 맞지 않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수렴한다고 생각한다(그래프 참조). 1987년부터 2022년까지 35년간 한국 M2는 60배 증가했다. 1987년 분양한 서울 압구정동 미성2차 아파트 49평형은 2022년 KB부동산 시세 기준 44억 원으로 분양가(7525만 원) 대비 58배 상승했다. 돈의 가치는 시간이 지나면 물가가 오르는 만큼 떨어지기 때문에 M2는 매년 증가한다. 물론 부동산 가격은 매년 상승하지 않는다. 하지만 집값은 M2와 비슷하게 올라가기 때문에 특정 시기에 급상승하며 M2에 수렴한다. 사람들이 돈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헤지하기 위해서라도 집을 사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집은 언제 사야 하나.
“그런 질문을 받으면 나는 의사 같은 대답밖에 못 한다. ‘집은 필요할 때, 돈이 있을 때, 빌린 돈을 갚을 수 있을 때, 쌀 때 사야 한다’고 말이다. 요즘 집을 사는 사람들은 실거주 목적이고, DSR이 40%밖에 안 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돈이 있으며 갚을 능력도 있다. 그래서 앞 3가지 조건에 해당하는데, 솔직히 네 번째 ‘지금이 바닥을 찍고 올라갈 타이밍인가’는 물음표다.”
‘이제 집을 사도 괜찮다’를 알 수 있는 신호가 있다면.
“첫 번째 신호는 미국의 급속한 금리인하다. 지난해 집값 하락 출발점이 미국발(發) 기준금리 급등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미국 연준(연방준비제도이사회)이 금리를 베이비스텝(0.25%p)이 아니라 빅스텝(0.5%p)으로 두 번 연속 내린다면 그것은 ‘돈을 풀겠다, 풀린 돈이 자산시장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지 않겠다’는 의미다. 두 번째는 DSR이나 LTV(주택담보대출) 완화다. 금리인하로 시장에 풀린 돈이 부동산으로 들어가는 걸 막으면 부동산시장 활성화는 쉽지 않다. 집값이 2021년 10월 최고점을 찍은 뒤 하락으로 접어든 것도 대출총량제 때문이다. 물론 가계부채가 심각한 지금 그것이 가능한 얘기인가 싶지만, 경기가 침체되면 마지막 카드가 될 수 있다. 세 번째는 전세가율이다. 지금은 전세가율이 낮아도 부동산 사이클상 언젠가 집값이 오르면 전세가도 오를 수밖에 없다. 2008년 전세가율은 매매가의 34%였다. 그러다 2013년 부동산시장이 바닥을 찍고 다시 상승세로 돌아서기 직전 60%를 넘겼다. 60%라고 하면 낮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전세가율 평균에 재건축 아파트도 포함돼서다. 보통 재건축 아파트는 전세가율이 30%, 올라야 40%다. 같은 시기 일반 아파트 전세가율은 70~80%에 달했다는 얘기다. 마지막으로는 주택임대사업자 부활이다. 현 정부가 들어설 때 검토했던 정책인데, 만약 이것이 다시 시행된다면 그때는 집을 사야 한다. 집값이 떨어진 상태에서 취득세, 보유세, 양도세 등 각종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에 그때부터 부동산 가격은 당연히 상승할 수밖에 없다.”
집값은 앞으로 고점 대비 얼마나 더 떨어질까.
“글로벌 금융위기 때를 보면 고점 대비 20% 떨어졌다. 이렇게 얘기하면 당시 하락을 경험한 사람은 ‘무슨 소리냐, 40% 떨어졌다’고 할 텐데, 이 역시 평균이라서 그렇다. 적게 떨어지는 곳은 10%, 매물이 많은 주요 대단지 아파트나 입지가 열악한 아파트는 40% 하락한다. 그래서 실제로는 평균보다 더블로 떨어지는 곳들이 있다고 봐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서울 강남 기준 평균 20% 떨어지면 바닥이 아닐까 한다.”
강남 기준 고점 대비 평균 20% 떨어지면 바닥
최근 청약 경쟁률이 높은 것도 빌라 전세사기와 관련 있다고 말했는데.“앞서 말한 대로 빌라에 살던 사람들도 아파트에 대한 열망이 커졌다. 그런데 지금 분양 물량이 많아 미분양이 쌓여 있다고 하면 청약을 안 하겠지만, 건설사들이 공급을 중단하면서 서울의 경우 분양 물량이 적고 미분양도 거의 없다. 더욱이 4월 1일부터 청약에서 가점제가 줄고 추첨제가 늘면서 청년 세대의 당첨 가능성이 높아졌다. 빌라에 살던 청년이 일단 아파트 전세로 옮겨갔다면 그다음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 청약이다. 우선 계약금만 있으면 되니까 청약부터 넣는 것이다. 분양가 상한제 시절에는 청약이 주변 시세보다 싸서 ‘로또’였지만 지금은 분양가가 올라 가격 메리트가 거의 없다. 그럼에도 경쟁률이 높은 것은 일단 2년 정도 시간을 벌면서 새 집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가격에서 더 빠지지만 않으면 밑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또 불안함을 헤지할 수 있다는 장점도 지닌다.”
절대 해선 안 되는 부동산 투자가 있다면.
“전원주택, 지역주택조합, 분양형 호텔이다. 먼저 전원주택의 경우 남자들이 로망을 갖는데, 지금까지 성공한 사례를 본 적이 없다. 대부분 갔다가도 1년 내 팔고 나오려 한다. 내 집만 괜찮지 단지 활성화가 안 되고, 인프라가 부족하며, 공급이 넘쳐 매매도 안 된다. 또 지역주택조합은 입주까지 진행될 확률이 매우 낮고, 건설사 분양 아파트보다 가격이 20%가량 저렴하지만 결과적으로 자재나 브랜드가 떨어져 그만큼 매매가 갭이 벌어진다. 예정보다 늘어나는 추가 분담금도 문제다. 분양형 호텔도 투자하면 5년 동안 수익을 보장한다지만 지켜지는 경우가 없고, 매매를 통한 시세차익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가격이 갈수록 하락한다. 만약 투자했다면 보통 1년은 약정 수익금을 주니 그때 팔고 나오는 게 최선이다.”
후배로부터 부동산 입문서 추천을 받고 책을 썼다고 서문에 적혀 있던데.
“내게 부동산 자문을 받은 후배가 시중에 나와 있는 책들이 너무 원론적이거나 실무적 내용이라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책 한 권만 소개해달라고 했다. 바로 떠오르는 책이 없어 동료 컨설턴트들에게 물어봤지만 다들 초심자 추천용으로는 주저된다는 얘기를 했다. 그래서 직접 책을 쓰기로 하고 초심자는 물론, 부동산에 관심 많은 이들도 미처 짚지 못하는 맹점, 놓치고 있는 핵심 포인트와 변수들을 담았다. 아는 만큼 보이는 부동산 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려면 이 정도는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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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주간동아 1394호에 실렸습니다〉
이한경 기자 hklee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