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18일 친강(秦剛)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중국을 방문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을 베이징 댜오위타이징(釣魚臺) 국빈관 건물 앞에서 맞았다. 친 부장은 지난해 말까지 주미 중국대사로 워싱턴에 있었지만 외교수장에 오른 뒤 블링컨 장관과 대면 회담을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친 부장은 영어로 블링컨 장관에게 “오는 길이 어땠느냐”고 간단히 물었다. 이어 두 사람은 복도를 걸으며 회담장인 국빈관 12호각으로 들어갔다. 양국 국기 앞에서 악수한 뒤 바로 긴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통상 회담 전 공개하는 모두 발언은 생략됐다. 촬영을 위해 회담장을 잠시 공개한 뒤 취재진도 퇴장시켰다. 미중 갈등이 경제, 안보 등 모든 부문에서 격화된 상황에서 환담이나 외교적 언사는 공개적으로 하지 않겠다는 양측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블링컨 장관이 이날 2018년 이후 미 국무장관으로는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해 미중 고위급 회담에 나서면서 최악을 향해 치닫던 미중 관계가 새로운 분수령을 맞게 될 것인지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양측은 이번 회담에서 지난해 11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합의대로 미중 갈등을 관리하는 고위급 소통 채널을 열어두는 방향에 공감대를 모았지만 대만 문제,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와 이에 대한 중국의 보복 등을 놓고 팽팽한 긴장을 이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 최악 치닫던 미중 갈등 일시봉합되나
블링컨 국무장관과 친 부장은 회담에서 미중 소통 복원과 충돌 방지를 위한 ‘가드레일(안전장치)’, 기후변화 대응 등 협력 재개 방안 등을 논의했다.
블링컨 장관은 중국으로 출발하기 전 싱가포르 외무장관과의 회담 직후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치열한 경쟁은 경쟁이 대립이나 갈등으로 번지지 않도록 지속적인 외교가 필요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것이 세계가 미국과 중국 모두에게 기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순방은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이 지난해 말 인도네시아 발리 합의를 지속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한 것”이라며 “(미중이) 오해를 피하려면 정부 전반에 걸쳐 고위급에서 정기적인 의사소통 라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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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WP)는 “중국이 블링컨 장관의 방중에 동의했다는 것 자체가 경제 회복을 모색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중 관계를 무시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최악의 미중 관계 속에 실질적인 외교 재개 자체가 가치 있는 목표”라고 분석했다.
● 대만·반도체 제재 두고 격돌…가드레일 구축 불투명
다만 미국이 중국에 대한 군사·첨단기술 견제 정책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는데다 중국은 미국을 향해 대만에 대한 ‘내정 간섭’ 중단과 기술 제재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이어가면서 미중 전략경쟁의 근본적 구도는 더욱 고착화됐다는 분석이다.
특히 블링컨 장관의 방중으로 성사된 양국 외교 담판에도 대만해협과 남중국해 등을 두고는 큰 간극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블링컨 장관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방중 목표에 대해 “미국의 이익과 가치, 그리고 미국이 전 세계의 동맹국과 파트너들과 공유하는 이익을 증진시키는 것”이라며 “여기엔 다양한 현안에 대한 직접적이고 솔직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포함된다”고 말했다.
반면 친 부장이 14일 블링컨 장관과의 통화에서 “미국이 중국의 핵심 이익을 존중하고 중국의 내정에 간섭하는 것을 멈추며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의 주권과 안보 발전 이익에 해를 끼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대만 문제 등 안보 현안, 반도체 등 첨단기술 제재를 두고는 양보 없는 설전을 예고한 것이다.
이에 따라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미중 군사 분야 소통 재개 등 미중 충돌을 막기 위한 ‘신냉전 가드레일’ 구축은 아직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CNN은 “이번 방중의 주요 목표는 워싱턴과 베이징 사이의 소통 채널, 특히 군사 대 군사 직접 소통을 재건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