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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화 800원대 코앞… 주식-예금 ‘바이 저팬’ 열풍

입력 | 2023-06-19 03:00:00

원-엔 환율 8년만에 최저
美긴축 종료 기대감에 엔화 급락… 4월 1003.6원 → 지난주 903.8원
국내 투자자들 日자산 관심 집중
엔화 예수금-주식 4조원 넘어서… 환전액도 지난해의 5배 달해



최근 원-엔 환율이 100엔당 900원 안팎까지 떨어지면서 엔화 관련 투자 수요가 늘고 있다. 18일 서울 명동의 한 환전소에서 외국인이 환전을 하고 있다. 뉴시스


미국의 긴축 기조가 막바지에 접어들었다는 기대감에 엔화, 달러화, 금 등 대표적인 안전자산들의 가격이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 특히 16일 일본은행이 금융 완화책을 유지하기로 결정하면서 원-엔 환율은 8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하락했다. 엔저 열풍을 활용한 국내 투자자들의 일본 관련 투자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 ‘엔저 효과’ 힘입어 일본 투자 활발

하나은행이 고시하는 원-엔 재정환율은 16일 기준 903.82원으로 905.4원이었던 2015년 6월 26일 이후 약 8년 만에 910원 이하로 내려왔다. 이는 올해 들어(1월 2일 971.93원) 약 7% 하락한 수치다. 원-엔 환율은 4월 초 1003.61원으로 연중 고점을 기록한 이래 꾸준히 하락세를 이어 왔다. 이 추세대로라면 원-엔 환율이 800원대까지 내려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고강도 긴축을 이어가는 동안 나 홀로 돈을 풀어왔던 일본은 16일 금융정책회의에서도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이로 인해 글로벌 시장에서 엔화 가치는 떨어지고 반대로 원화는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이면서 원-엔 환율의 내림세가 더 가팔라졌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이 끝나간다는 기대감과 올해 하반기 한국 반도체 업황 개선 전망 등에 원화가 힘을 받고 있는 것이다.

국내 투자자들은 값이 상대적으로 싸진 일본 자산에 대한 투자에 나서고 있다. 자본 총계 기준 상위 8개 증권사에 예치된 엔화 예수금 및 일본 주식 평가금액 전체 규모는 15일 기준(메리츠증권은 16일 기준) 4조956억 원으로 집계됐다. 1년 전인 지난해 6월 말(3조1922억 원)보다 9000억 원 이상 늘고, 올해 1월 말(3조4933억 원)과 비교해도 6000억 원 이상 증가한 수치다.

16일 닛케이평균주가가 3만3706.08엔으로 마감하며 1990년 3월 이후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최근 일본 증시는 연일 활황세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엔저 효과까지 더해지며 투자 수요도 늘고 있다. 엔화 가치가 떨어졌을 때 일본 주식을 매입해 보유하다가 향후 엔화가 강세로 전환하면 매도해 환차익을 얻으려는 것이다.

엔화 환전액도 늘고 있다. 국내 4대 은행(KB국민 신한 하나 우리)의 5월 엔화 매도액은 301억6700만 엔(약 2727억 원)으로, 4월(228억3900만 엔)보다 73억 엔 이상 증가했다. 고객의 요구에 따라 원화를 받고 은행이 엔화를 내준(매도) 환전 규모가 300억 엔을 넘어섰다는 의미다. 이는 지난해 5월(62억8500만 엔)의 4.8배에 달하는 규모다. 또 4대 은행의 엔화 예금 잔액도 이달 15일 현재 8109억7400만 엔으로 작년 6월 말 대비 38%가량 급증했다. 이는 최근 엔저로 일본 여행이 늘면서 엔화 수요가 늘어난 데다, 향후 환차익을 기대하며 값싼 엔화를 미리 사두려는 투자자가 늘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 “안전자산보다 위험자산 선호 이어질 것”
또 다른 안전자산인 미 달러화 가치도 뚝 떨어졌다. 미국 경제전문 매체 마켓워치에 따르면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지수는 13일 103.34였다가 연준이 금리 동결 결정을 내린 14일 102.95, 15일 102.11로 계속 내렸다. 원-달러 환율도 16일 전 거래일 대비 8.6원 내린 1271.9원에 마감했다. 연고점(1342.1원)을 찍은 지난달 2일 대비 약 5.2% 하락했다. 달러화 가치 하락은 글로벌 금융시장에 연준의 긴축 종료 기대감이 커진 데 따른 것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이 15일(현지 시간) 8연속 금리 인상을 단행한 것도 달러 약세를 부채질했다.

대표적 안전자산인 금 가격도 다시 주춤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6일 국제 금 시세는 온스당 1961.15달러로 한 달 전(2005.82달러)보다 45달러가량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이번 연준의 금리 동결을 계기로 안전자산보다는 위험자산에 대한 선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김정윤 대신증권 연구원은 “고용 등 앞으로 나올 경제지표들에 따라 연준의 통화정책에 대한 시장의 예상도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이미 시장에서 통화정책에 대한 불안감은 축소됐기 때문에 안전자산보다는 주식 투자가 우위에 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아형 기자 abro@donga.com
김수연 기자 sy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