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천광암 칼럼]“중국 초청받아 티베트 간 게 뭔 문제냐”는 야당 의원들

입력 | 2023-06-19 00:03:00

엑스포 주최 王君正 시짱 당서기
신장자치구 ‘인권침해 책임자’ 전력도
王 주제 발표 포럼서 도종환 축사
티베트인 159명 焚身 아픔 아나



천광암 논설주간


중국 인민해방군 병력 4만 명이 양쯔강을 넘어 티베트(시짱·西藏) 동부를 침공한 것은 1950년 10월의 일이다. ‘국공내전’을 치르면서 무수한 실전으로 단련된 인민해방군이 제대로 된 훈련 한번 받은 적이 없는 티베트군을 궤멸시키는 데는 채 한 달이 걸리지 않았다. 유엔 등 국제사회도 ‘약소국’ 티베트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 여유가 없었다. 그해 6월 25일 발발한 한국전쟁에 온 신경이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1951년 외형적으로는 ‘협의’, 실질적으로는 ‘강압’으로 티베트를 병합한 중국은 독립이나 자치를 요구하는 봉기나 시위에 대해 가차 없는 폭력으로 대응했다. 폭격기나 탱크를 앞세운 무차별 살육도 주저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불교 탄압과 티베트어 말살 등 민족 정체성을 지워버리려는 ‘공작’이 진행됐다. 한족(漢族) 노동자와 군인 등을 대대적으로 이주시켜 티베트를 식민지화하는 작업도 줄기차게 진행 중이다.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의 발언 후폭풍이 거센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의원 7명이 ‘논란의’ 티베트 방문을 강행했다. 단장 격인 도종환 의원은 ‘제5회 시짱관광문화국제엑스포’의 부대 행사로 17일 열린 키노트포럼에 참석해 축사까지 했다.

도 의원은 티베트 방문에 비판적인 국내 여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부정 여론을 만들려는 것이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나머지 6명의 의원도 이번 방문을 전후해 시종일관 “정치와 무관한 관광·문화 행사에 참석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평소 ‘소수자 인권의 옹호자’이자 ‘사회적 약자의 대변자’를 자처하는 민주당 의원들의 언행치고는 무개념하다.

최근 국제적으로 유행하는 현상 중에 ‘그린 워싱(Greenwashing)’ ‘스포츠 워싱’이라는 것이 있다. 악덕 기업이 ‘눈속임’성 친환경 행보로 이미지를 분칠하거나, 인권 침해 논란에 휩싸인 국가가 사람들의 이목을 혹하게 만들 만큼 화려한 스포츠 행사로 ‘이미지 물타기’를 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개혁주의자인 후야오방 중국공산당 총서기는 1980년 중국이 티베트에 저질러 놓은 참상을 눈으로 확인하고 부끄러움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티베트를 둘러싼 어두운 역사를 지금의 중국은 어떻게든 지우고 덧칠하려 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개발워싱’ ‘관광워싱’ ‘문화워싱’이다. 이를 통해 중국이 만들어 내려는 티베트상(像)은 2021년 10월 당시 왕이 외교부장이 했던 연설 속에 잘 나타나 있다.

“오늘날 티베트는 중국 민주주의와 인권의 발전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 티베트는 개방과 협력의 중요한 창구입니다. … 시짱관광문화엑스포 등이 역동적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이웃 국가들과의 일대일로 협력은 풍성한 결실을 맺고 있습니다. … 우리는 티베트의 발전과 진보에 대한 어떠한 공격이나 비방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화려한 수사와는 달리 티베트의 인권은 여전히 후진(後進)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5월 일본 히로시마에 모인 주요 7개국(G7) 정상들은 티베트와 신장 지역의 강제 노동에 대한 우려를 공동선언문에 담았다. 또 미 국무부는 5월 공개한 종교의 자유에 관한 보고서에서 티베트불교 등 종교단체에 대한 재정 감시 강화 등을 거론하며 중국을 ‘세계 최악의 인권 및 종교자유 침해국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티베트의 실질적 1인자이자 이번 박람회의 주최자 격인 왕쥔정(王君正) 시짱 당서기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당 부서기와 신장생산건설병단 서기를 지낸 왕쥔정은 심각한 인권 침해에 대한 책임자로 지목돼 2021년 3월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제재 대상 명단에 오른 전력이 있다.

정치·외교 무대에서는 백 마디 말보다 하나의 장면, 한 장의 사진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때가 많다. 도 의원은 심각한 인권 침해로 국제사회의 손가락질을 받는 인물이 주제 연설을 한 그 시각, 그 자리에서 ‘한국 의원 대표단 단장’ 타이틀을 걸고 축사를 한 자신의 행동이 어떤 정치적 메시지를 갖게 될지를 스스로 숙고해 보기 바란다.

2009년 이후 지금까지 승려를 비롯한 티베트인 159명이 분신(焚身)을 했다. 이들이 스스로 몸을 불살라 가면서 전하려고 했던 이야기가 7명의 민주당 의원들 귀에는 가서 닿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




천광암 논설주간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