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기준에 어긋나는 비행을 했다며 국토교통부로부터 자격 정지 30일 행정처분을 받은 부기장이 효력정지 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승소했다. 업계에서는 국토부가 안전에 대한 종합적 판단보다는 처벌 중심적 행정에 치우쳤음을 보여준 사례라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은 국토교통부가 전 이스타항공 소속 A 부기장에게 내린 사업용조종사 자격증명 효력 정지(30일) 처분을 취소해야 한다고 15일 판결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A 부기장이 조종석에 앉은 항공기는 2019년 8월 12일 제주공항에서 이륙해 남서쪽에서 김해공항에 착륙하던 중, 김해공항을 서쪽에 두고 우측으로 큰 원을 그리며 선회 비행(써클링, Circling)을 했다.
이스타항공 904편 실제 선회접근 경로. 노란색 선이 실제 항공기의 경로이며, 파란색 원이 이스타항공 규범에 적시된 선회 접근 반경 기준이다. 가장 바깥쪽의 붉은색 원이 타 항공사 및 국토교통부 기준 선회 접근 반경이다.
이 과정에서 시각 참조물을 확인하지 않고 선회 반경 기준인 2.3 NM(Nautical mile, 해리)을 초과해 2.7~2.8 NM으로 선회 비행을 했다. 그러자 고도가 낮아지면서 경고음이 울렸다. 이스타항공 규정대로라면 ‘고 어라운드(Go Around, 착륙을 단념하고 재차 상승해 비행하는 것)’를 해야 했다. 그러나 당시 기장과 A 부기장은 곧바로 정상적인 상태로 비행기를 위치시키고 착륙했다. 이스타항공은 내부적으로 ‘안전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절차를 준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계처분을 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안 국토부가 관련 조사를 했고, 이스타항공의 내부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기장과 부기장에게 30일 자격증명 효력 정지 처분을 내렸다.
이에 기장과 A 부기장은 각각 국토부 처분이 위법하다며 소송을 걸었다. 해당 비행이 항공 안전에 장애를 줄 만한 잘못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기장은 1심 판결이 나기 전 일신상의 이유로 소송을 포기한 것으로 전해진다.
1심 재판부는 해당 비행이 항공 안전에 장애를 줄 만한 잘못이 아니며, 기장을 돕는 부기장에게는 과도한 처분이라는 이유를 들어 A 부기장의 손을 들어줬다. 국토부는 바로 항소했지만 2심에서도 A 부기장이 승소한 것이다.
2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은 이 사건에서 실체적 위험과 국토부의 재량권 남용 부분에 집중했다. 재판부는 A 부기장의 비행이 선회 반경 2.3 NM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는 이스타항공 내부 규정을 어긴 건 맞다고 인정했다. 다만, 재판부는 다른 항공사들의 경우 선회 반경을 3.7 NM으로 정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A씨가 소속 항공사의 운항규정을 준수하진 못했지만, 국토부가 발간한 항공정보간행물 기준을 순수했고, 특히 김해공항을 이용하는 대부분의 항공사에서 선회 접근 반경의 기준을 3.7 NM으로 정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A 부기장의 비행이)항공 안전에 위험을 발생시켰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또한 재판부는 △비슷한 시기 김해 공항에 접근하는 비행기들이 선회 반경 2.3 NM을 초과해서 운행하고 있었다는 점 △해당 비행이 이스타항공 내부 조사에서도 ‘항공 안전 장애’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는 점 △최저 장애물 회피 고도를 확보한 비행이었다는 점 등에 비춰 위험한 비행은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결국 이스타항공 규정이 다른 항공사에 비해 강도가 높았던 것이었을 뿐 안전 위험을 발생시킨 건 아니라고 본 것이다.
이스타항공 항공기.
변종국 기자 bj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