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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파괴된 인천 보며 떠나… 한국 발전 대단”

입력 | 2023-06-20 03:00:00

6·25 참전용사 94세 佛 로랑씨
“1953년 24세 부대막내로 참전
공산주의 꺾고 자유 지키려 싸워
1989년 다시 찾아간 한국서 감명”



10일(현지 시간) 프랑스 노르망디 자택에서 6·25전쟁 참전용사 폴 로랑 씨가 참전 당시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노르망디=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북한을 저지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웠던 보람이 정말 컸지요.”

6·25전쟁 정전(1953년 7월 27일) 70주년을 맞아 10일(현지 시간)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 생말로의 자택에서 만난 참전용사 폴 로랑 씨(94)는 전후 처음으로 1989년 한국의 비무장지대(DMZ)를 찾았을 때를 회고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휴전 뒤 인천에서 또 다른 전쟁터인 베트남으로 떠날 때 인천 주변 지역이 100% 파괴됐던 모습을 보면서 너무 슬펐다”면서 “그랬던 한국이 전후 정부의 통치에 여러 문제가 있었음에도 이렇게 발전했다니 정말 대단하다”고 덧붙였다.

1949년 알제리에서 군 생활을 시작했던 로랑 씨는 1951∼1952년 베트남을 거쳐 1953년 4∼10월 유엔군 프랑스대대 소속으로 6·25전쟁에 중사로 참전했다. 그는 주로 휴전이 이뤄질 때까지 중공군과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진 중가산 전투에서 싸웠다. 당시 프랑스는 육해군 3241명을 파병해 292명이 전사했다. 현재 고령으로 남은 생존자는 29명.

1953년 당시 부대의 최연소자(24세)로서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를 떠나 부산에 닿았던 벅찬 감정을 잊을 수 없다. “미군들이 음악을 화려하게 연주하며 우리 대대 환영식을 거대하게 해줬어요. 당시엔 전쟁에 대한 두려움보단 ‘공산주의를 이겨야 한다’는 마음이 강했죠.”

그는 “당시 나는 물론이고 참전을 자원한 다른 군인들도 의지가 단단했다”면서 “중공군의 반격을 받았을 땐 매 순간 ‘실수하면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잠시라도 경계를 놓을 수 없었다”고 했다. 로랑 씨는 전쟁에서 숨진 동료들을 떠올리면서 “나는 전쟁에서 살아남아 다시 프랑스로 돌아와서 오랜 세월 이렇게 잘 살고, 오늘 인터뷰를 하다니 정말 운이 좋다”면서 “동료들이 많이 숨져 너무 슬펐지만, 자유를 지키려 싸웠으니 영예롭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르망디=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