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급 교류 등 합의에 “좋은 일” 美국무 방중으로 갈등 완화 기류 연내 美中 정상회담 가능성 커져
시진핑, 5년 만에 美 국무장관과 회동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9일(현지 시간)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약 35분간 회동했다. 시 주석이 미 국무장관을 만난 것은 2018년 6월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미 국무장관 이후 5년 만이다. 두 사람은 이날 양국 관계 정상화의 필요성에는 공감했지만 대만 문제 등을 둘러싸고 적지 않은 이견을 보였다. 베이징=AP 뉴시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19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약 35분간 회동했다. 시 주석이 미 국무장관을 만난 것은 2018년 6월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미 국무장관의 베이징 방문 후 5년 만이다.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미중 관계가 정상화 계기를 마련했을 뿐 아니라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시 주석의 연내 대면 정상회담 가능성 또한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관영 중국중앙(CC)TV 등에 따르면 시 주석은 블링컨 장관에게 “두 강대국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윈윈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양국이 올바르게 공존할 수 있느냐에 인류의 미래와 운명이 걸려 있다”며 양국 관계의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 블링컨 장관이 이날 오전 왕이(王毅)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중앙외사공작위원회 판공실 주임, 하루 전 친강(秦剛) 외교부장과 각각 만나 양국 정상이 지난해 11월 주요 20개국(G20) 회담 때 합의했던 사안을 이행하기로 한 것을 두고 “매우 좋은 일”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다만 시 주석은 이날 “미국이 중국을 존중하고 중국의 이익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는 기존 입장 또한 거듭 되풀이했다. 이어 “(두 나라 중) 어느 쪽도 자신의 뜻대로 상대를 만들거나 상대방의 발전 권리를 박탈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상석 앉은 시진핑 “美, 中 존중해야” 블링컨 “中, 책임 다해야”
시진핑, 방중 美국무와 35분 회동
시진핑 “양국 공통이익 중시해야”
접견마친 블링컨 “북핵 역할 주문”
왕이 “대만문제 타협여지 없다”
시진핑 “양국 공통이익 중시해야”
접견마친 블링컨 “북핵 역할 주문”
왕이 “대만문제 타협여지 없다”
2018년 폼페이오 접견 때와 다른 자리배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이 19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왼쪽에서 두 번째)과 만났다. 긴 테이블 한쪽에는 블링컨 장관을 포함한 미국 측 인사, 반대편에는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오른쪽에서 두 번째), 친강 외교부장(오른쪽) 등을 앉히고 자신이 상석에서 회의를 주재하는 듯한 모습을 연출했다(위쪽 사진). 2018년 6월 같은 장소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미 국무장관(아래 사진 왼쪽)을 만났을 때 나란히 앉았던 것과 대조적이다. 베이징=신화·AP 뉴시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양국이 책임과 의무를 갖고 양자 관계를 잘 관리하는 게 양국과 나아가 세계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말했다.”(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블링컨 장관이 미 국무장관으로는 5년 만에 방중해 중국 외교라인의 1·2인자와 시 주석을 잇달아 만나면서 미중 고위급 대화 창구가 사실상 복원됐다. 관계 정상화를 위한 첫발을 뗀 것이다. 그럼에도 이틀간의 연쇄 회동은 미중 대화가 재개돼도 양국의 핵심 현안을 둘러싼 이견과 패권경쟁 구도가 지속될 것이라는 점 또한 명확히 보여줬다.
● 미중 ‘해빙 무드’ 첫발 뗐지만…
중국 외교부가 공개한 35분간의 면담 내용에 따르면 이날 시 주석의 발언은 대체적으로 우호적이었다. 시 주석은 “현재 국제사회는 미중 관계의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면서 “미중 사이에서 편드는 것을 꺼리고, 양국의 평화 공존과 우호 협력을 기대한다”고 운을 뗐다.
블링컨 장관 역시 시 주석 면담 후 연 기자회견에서 “미중은 모두 관계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며 보조를 맞췄다. 그는 북한 미사일 발사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과 관련해 중국의 역할에 대해서도 논의했다고 밝혔다. 특히 블링컨 장관은 “중국 기업 기술이 러시아로 유출되지 않도록 유의해 달라고 했고, 중국은 러시아에 살상무기를 제공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고 전했다.
미중이 블링컨 장관의 방중으로 관계 해빙의 첫발을 뗐지만 양국의 핵심 현안을 두고는 여전히 뚜렷한 입장 차를 보였다. 시 주석은 “중국은 미국에 도전하거나 미국의 패권을 대체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미국도 중국을 존중해야 하며 중국의 정당한 권익을 해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정부가 반도체 수출 규제를 비롯해 중국의 첨단산업 발전에 대해 견제에 나선 것을 겨냥한 발언이다. 이에 대해 블링컨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광범위한 경제적 성공은 미국에도 도움이 되지만, 국가안보를 보호하기 위해 특정 기술을 경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시 주석은 이날 두 개의 긴 테이블 한쪽에는 블링컨 장관 일행을, 다른 한쪽에는 왕 주임 등 중국 측 인사들이 각각 앉은 가운데 상석에서 회의를 주재하는 듯한 모습을 연출했다. 5년 전 당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의 회동 때는 탁자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았다. 이에 미국에 당당하게 대응하고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신호를 주려 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 美 재무·상무장관 방중 가시화
미중은 이번 연쇄 회동을 통해 고위급 접촉 유지와 기후변화 및 펜타닐, 보건 등 현안 해결을 위한 실무그룹 협의 추진, 인적 교류 확대 등 미중 관계 안정화를 위한 조치에도 일부 합의했다. 이에 따라 재닛 옐런 재무장관과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의 연쇄 방중 등 경제·산업 분야에서부터 해빙 국면이 가시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연내 미중 정상회담이 성사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 당국자들을 인용해 “중국의 최우선 과제는 시 주석이 11월 미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 참석해 바이든 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미중 긴장을 완화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