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난이도 논란] 교과과정 밖 ‘킬러 문항’ 올 수능에 안 낸다 尹 “아이들 갖고 장난치는 것” 비판 정부 “적정 난도 확보되도록 출제”… 당정, 9월 모의평가부터 적용 방침 평가원장 “심려 끼쳐 죄송” 사임… 수능 5개월 앞두고 초유의 사태
정부 여당이 올해 11월 16일 치러질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이른바 ‘킬러 문항’으로 불리는 초고난도 문항을 출제하지 않겠다고 19일 발표했다. 같은 날 이규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은 “6월 모의평가 난도와 관련해 수험생과 학부모님께 심려를 끼쳐 죄송한 마음”이라며 사임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수능 관련 지시를 내린 지 나흘 만이다. 수능을 다섯 달 남긴 시점에서 출제 기관장이 물러나는 초유의 사태에 교육계 안팎에서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날 오전 이 부총리는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과의 실무 당정협의회에서 “공교육 과정 내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은 출제를 배제하고 적정 난도가 확보되도록 출제 기법을 고도화하겠다”고 밝혔다. 또 “지난 정부가 방치한 사교육 문제, 학원만 배불리는 현재 상황에 대해 대통령이 여러 차례 지적했지만 신속히 대책을 내놓지 못한 것에 대해 국민께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당정은 9월 모의평가부터 ‘킬러 문항 배제’를 적용하기로 했다.
수능을 불과 150여 일 앞둔 시점에서 대통령의 발언 탓에 혼란이 벌어졌다는 비판에 대해 당정은 대통령실을 엄호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대통령께선 검찰 초년생 시절부터 입시 비리를 수없이 다뤘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입시 부정 사건을 수사하는 등 입시제도 전반을 꿰뚫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당정 발표 뒤 오후에는 평가원장이 갑작스레 사임 의사를 밝혔다. 이 원장은 “6월 모의평가와 관련해 기관장으로서 책임을 지고 사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의 발언을 시작으로 교육부 대입국장 경질, 평가원 감사, 평가원장 사임 등 파장이 이어지자 교육계는 우려했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새 평가원장 선임에 족히 서너 달은 걸릴 것이다. 수능에 차질이 빚어질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 수능이 ‘물 수능’(쉬운 수능)으로 변별력을 상실할 것이라는 우려도 학생들 사이에서 퍼지고 있다. 교육계에서는“킬러 문항 배제만으론 사교육 부담을 경감시키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과목당 1, 2개인 킬러문항 위해 로스쿨 입학시험 문제까지 풀고
한달 200만~300만원 학원 다녀… “정답률 5, 6%… 그냥 찍는게 낫다”
수능 모든 과목서 킬러문항 없앨듯
한달 200만~300만원 학원 다녀… “정답률 5, 6%… 그냥 찍는게 낫다”
수능 모든 과목서 킬러문항 없앨듯
정부 여당이 19일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소위 ‘킬러 문항’을 배제하겠다고 밝힌 뒤 한 사교육 업체 관계자는 본보에 ‘킬러 문항’을 이렇게 설명했다. 수능 과목당 1, 2문제에 불과한 이 킬러 문항에 대비하기 위해 고3과 재수생 등 수험생들은 로스쿨 입학시험인 법학적성시험(LEET·리트) 문제까지 풀고, 초고난도 문제가 다수 나오는 사설 모의고사에 돈을 들여 응시해 왔다. 앞으로는 윤석열 대통령이 언급한 국어 비문학, 과목 융합형 지문뿐만 아니라 수능 전 과목에서 킬러 문항이 배제될 것이라고 교육부는 전했다.
● 위험 가중 자산 묻는 국어, 2%만 맞힌 수학
킬러 문항이라는 용어는 2010년대 초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상대 평가 과목인 국어와 수학에서 주로 출제됐다. 배점이 큰 고난도 문항이 ‘킬러 문항’으로 출제되면서 이 문제의 정답 여부에 따라 등급이 나뉘었다.
국어에서는 주로 ‘비문학’이라 불리는 독서 영역에서 킬러 문항이 출제됐다. 지문을 바탕으로 비판적 사고, 추론적 사고를 통해 정답을 도출해야 한다는 점이 학생들에게 어렵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지문의 난도를 높이면 연계 문항의 난도도 함께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킬러 문항을 내기에 용이한 점도 있다.
이 때문에 과학 등 고교 문과생들에게 생소한 개념의 지문이 다수 등장했다. 2019학년도 수능 국어 31번은 만유인력과 관련된 지문을 읽고 옳지 않은 내용을 찾는 문제였다. 당시 물리학자들은 “만유인력에 대한 기초 지식이 있어야 풀 수 있어 국어 문제가 아니라 물리 문제”라고 비판했다.
2020학년도 수능 국어 40번은 자기자본비율(BIS), 위험 가중 자산, 바젤 협약 등의 개념을 통해 은행의 재무상태를 평가하는 지문이 제시됐다. 서강대 경제학부 석좌교수인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이날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이 문제를 킬러 문항의 예시로 들며 “경제학적 지식이 필요한 이런 어려운 문제를 국어 시험에서 풀어보라고 한다”고 비판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외부 전문가나 과외 외에는 사실상 풀기 어려운 문제가 출제되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라고 했다.
수학은 문제 풀이 과정과 시간을 극단적으로 늘려놓는 식으로 킬러 문항이 출제됐다. 가장 악명이 높았던 수학 킬러 문항은 2018학년도 수능 수학 가형 30번으로, 정답률은 2%대에 불과했다. 이 문제는 미분에 대한 여러 개념이 복합적으로 출제돼 일각에서는 고교 과정을 벗어난 문제라는 비판도 나왔다.
● “사교육 주범” vs “변별력 필요”
상위권, 최상위권 학생들은 1등급을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킬러 문항에 대비하기 위해 사교육을 찾고 있다. 수능 국어 독서 영역은 최대한 다양한 주제의 낯선 지문을 읽는 방식으로 대비하는데, 학원만큼 손쉬운 방법이 없다.
지문 난도가 올라가면서 일부 학생은 LEET 공부에 나서고 있다. 실제로 2022학년도 수능 국어에서는 ‘헤겔의 변증법’과 관련된 지문이 제시돼 리트 언어이해 문제와 유사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수학 킬러 문항 역시 고난도 문항을 많이 푸는 방식으로 대비하고 있다. 이에 맞춰 학원들은 ‘킬러 문항, 준킬러 문항 다수 확보’ ‘킬러 문항 특강’ 등을 내세우며 홍보를 하고 있다. 일부 학원은 킬러 문항을 발굴하기 위해 공모전도 열었다. 이런 학원들의 수강료는 한 달에 200만∼300만 원에 달한다.
일각에서는 킬러 문항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원중 대성학원 입시전략실장은 “킬러 문항이 없어지면 수능의 변별력이 없어질 것”이라며 “대학 입장에서는 본고사, 논술고사 등 다른 방법을 통해 학생들을 선발하는 방안을 고려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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