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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옷 차림 탈출” 악몽이 된 휴가…“자다가 탄 냄새 맡고 긴급 대피”

입력 | 2023-06-20 16:30:00


20일 오전 9시33분께 부산 해운대구 한 호텔 지하에서 불이 나 소방당국이 고가사다리차를 이용해 투숙객들을 구조하고 있다. 부산소방재난본부 제공

“휴가 왔다가 무슨 봉변인가 싶습니다.”

20일 오전 9시33분께 부산 해운대구 해운대해수욕장 인근 호텔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해 투숙객과 건물 이용자 등 170여명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해당 건물 지하 6층 폐기물 처리장에서 시작된 이 불로 연기가 건물 중상층부에 위치한 호텔까지 번져 투숙객들은 잠옷만 걸친 채 건물 밖으로 빠져나와야 했다.

화재 건물 인근에 천막과 돗자리 등으로 마련한 임시 대피소에는 약 40~50명의 대피자들이 검게 그을린 마스크와 젖은 수건을 두르고 모여 있었다. 객실 슬리퍼를 신은 일부 대피자들도 눈에 띄었다.

경기도 성남에서 휴가 차 부산을 방문한 12층 투숙객 A씨는 “잠옷 차림으로 몸만 급하게 나왔다. 자고 있는 와중에 탄 냄새를 맡고 대피했다. 계속 잤으면 어떻게 됐을지 아찔하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휠체어 이용자 B씨는 “복용하는 약을 챙기지 못해 지금 매우 힘든 상태다. 호텔에 놓고 온 소지품 등은 언제쯤 받을 수 있는지 몰라서 난감하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휴가를 왔는데 속상하다”고 털어놨다.

임시로 마련된 해운대구 민원접수센터에서 투숙객들이 이름, 연락처, 투숙 호텔과 호수를 작성하고 있다.2023.6.20/뉴스1

고층 투숙객 대부분은 화재 경보나 안내 방송을 듣지 못한 채 타는 냄새와 호텔직원의 알림으로 화재를 인지했다고 토로했다.

외출 후 뒤늦게 화재를 인지한 투숙객들도 건물 근처 민원 접수처를 찾아 난감한 상황을 설명했다. 접수처 근처에서는 ‘내 차가 지하주차장에 그대로 있다’, ‘렌트카인데 어떡하냐’, ‘핸드폰도 지갑도 두고 나왔는데 무작정 기다려야하냐’며 불만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특히 해당 건물 객실은 3개의 호텔로 구성돼 있어 투숙객마다 안내와 보상·처우도 달라 현장 혼란이 더욱 가중됐다.

학회 일정으로 부산을 찾은 투숙객 C씨는 “교수, 학생 등 4명이 함께 왔는데, 각자 묵은 객실의 소관 호텔이 달라 안내가 다르게 이뤄지고 있다. 부산 시내 다른 호텔을 예약해주겠다고 해서 일행들과 뿔뿔이 흩어지게 됐다”고 난감해했다.

또 연박을 하는 사람들에게만 대체 객실을 제공하겠다는 호텔 관계자의 안내에 당일 체크아웃 손님들은 “차량도 짐도 없이 발이 묶여 있는데 여기서 노숙을 해야 하냐”며 언성을 높였다.

20일 오전 9시33분께 부산 해운대구 한 호텔 지하에서 불이 나 투숙객들이 수건 등으로 코와 입을 막은 채 밖으로 대피하고 있다. 2023.6.20/뉴스1

뿐만 아니라 호텔의 늑장 대응으로 피해를 본 이도 있다.

이날 체크인을 하러 호텔을 찾은 재이 신(Jay shin, 미국)은 “호텔을 찾아오니 불이 났다고 해 황당하다. 호텔 측에서 미리 알려줬다면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텐데 현장에서 뒤늦게 안내를 받았다”고 화를 냈다.

특히 화재 완진 이후에도 해당 호텔 홈페이지에서는 예약 접수 창고가 여전히 활성화돼 있어 호텔 영업 재개 시점에 따라 추후 피해자가 더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호텔 관계자는 “갑작스런 상황에 별다른 대책이 없어 난감하긴 마찬가지”라며 “상황이 정리되는 대로 투숙객들이 짐을 챙길 수 있도록 안내하고 차량 피해 등은 추후에 구체적인 보상안을 마련하겠다”고 전했다.

현장을 찾은 김성수 해운대구청장은 “관광이나 여행으로 호텔을 찾은 관광객들이 많을텐데 안타깝지만 인명 피해가 없어 다행이다”면서도 “호텔 측이 정신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배상을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소방재난본부는 “현재 지하층 배연작업이 계속 진행 중이며 작업이 마무리되는대로 화재원인과 재산피해 등을 파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부산=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