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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F, ‘단타’ 아닌 장기투자의 기초자산으로 인식해야”

입력 | 2023-06-21 03:00:00

韓 주식시장에 ETF 도입 주역
배재규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
“금융사도 단기 실적 치중 개선을”



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투자신탁운용 사무실에서 배재규 대표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2030년이면 상장지수펀드(ETF) 시장 규모가 300조 원까지 성장할 것이다. 그리고 이 수요 대부분은 연금시장에서 나올 것이라고 본다.”

한국 ETF 시장 규모가 100조 원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는 가운데 19일 서울 영등포구 전국경제인연합회 사무실에서 배재규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62)를 만났다. ‘한국 ETF 시장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배 대표는 한국 주식시장에 ETF를 최초로 도입한 주역. 배 대표가 삼성자산운용 본부장 시절인 2002년 10월 첫 ETF가 상장된 이후 20년여 만에 국내 ETF 시장 규모는 약 97조 원 규모로 불어났다. ETF 시장의 후발주자로 분류되는 한투운용은 배 대표 취임 이후 ETF 시장 점유율을 지난해 말 3.5%에서 이달 16일 4.6%로 끌어올렸다.

배 대표는 20년 만에 100조 원에 육박한 국내 ETF 시장을 두고 앞으로도 성장 여력은 충분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한국 ETF가 주식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4%로, 12%가 넘는 미국의 3분의 1 수준이지만 상품 출시 동향의 시차는 1년도 채 나지 않는다”며 “그만큼 한국의 ETF 시장 성장 속도가 빠르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ETF는 특정 지수나 자산의 가격 움직임에 연동되는 펀드로 주식시장에 상장돼 있어 주식처럼 실시간 거래가 가능하다. 이 같은 투자 편리성 등의 이유로 ETF는 특히 개인투자자들에게 각광받고 있다. 배 대표는 개인투자자들을 향해 ETF를 “‘단타 투자 수단’이 아닌 ‘장기 투자의 기초자산’으로 인식을 바꿔 달라”고 당부했다. 배 대표는 “실제 ETF 등에만 투자한 사람들의 수익 총합을 보면 생각보다 마이너스가 많은데, 이는 ‘자산 배분’이 우선적으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ETF를 거의 모든 산업에 필수불가결한 부품이 돼버린 반도체에 비유했다. “반도체로 휴대전화, TV 등 모든 전자제품을 만들 수 있듯이 ETF를 기초자산으로 활용해 주식, 채권, 국내, 해외 등 자산배분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이를 장기간 가져갈 수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금융사들의 운용 능력보다는 상품 차별화 능력이 중요해졌다는 점도 강조했다. 배 대표는 “과거 고객의 다양한 수요를 충족시킬 상품이 부족했던 시절에는 어떻게 하면 고객의 돈을 더 잘 운용해 수익률을 높일지가 관건이었다면, 이제는 상품을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액티브한 운용 전략이 반영된다”고 말했다.

배 대표는 단기 실적 쌓기에 혈안이 돼 고객들의 장기적인 수익은 뒷전인 금융사들의 영업 관행이 개선돼야 한다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그는 “ETF든 타깃데이트펀드(TDF)든 상품 여러 개를 만들어 놓고 그때그때 수익률이 좋으면 팔고 안 좋아지면 다른 것을 파는 식으로 영업하면 고객은 ‘마루타’가 되는 셈”이라며 “고객들에게 책임지지 못할 말들을 하면서 돈을 모으면 당장은 금융사의 운용자산(AUM)이 늘어날 수 있겠지만 언젠간 그 고객을 잃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아형 기자 abr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