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가격 L당 최소 69원 인상 방침 러 전쟁 탓 수입 사료 값도 폭등 우유 수요 줄어도 값 못내리는 구조 빵-커피 값 자극 ‘밀크플레이션’ 우려
20일 오후 서울 중구 롯데마트 서울역점을 찾은 고객이 우유를 고르고 있다. 낙농업계와 우유업계에 따르면 9일부터 시작된 원유 가격 협상에서 L당 69~104원 범위 안에서 원유 가격을 인상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올해 우유 원료인 원유(原乳) 가격이 역대 최대 폭으로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지난해 한 차례 큰 폭으로 오른 국내 우유 가격이 또 인상되며 빵과 커피 등 관련 제품 가격이 연쇄적으로 오르는 ‘밀크플레이션’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국은행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올해 중반까지는 둔화할 것으로 예측했지만 소비자 체감도가 높은 식품 가격 상승 행진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 국내 원유값, 2년 연속 역대 최대 폭 인상 전망
우유는 빵, 커피 등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식품들의 원재료가 돼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클 거라는 우려가 나온다. 경기 고양시에서 베이커리를 운영하는 박모 씨는 “우유 가격이 더 오르면 비용 충당을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가격을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 사료 95% 수입 의존… 원유가 연동제, 가격 왜곡 키워
우유 가격 상승 원인으로는 사료비를 비롯한 제조비 인상이 꼽힌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유 생산비는 L당 958.71원으로 전년 대비 13.7%(115.76원) 올랐다. 상승분의 70.1%는 사료비 상승이 원인이었다. 국내 농가 95%가량이 수입 사료에 의존하고 있는데, 세계 5위권 배합사료 수출국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사료 가격이 올랐다.우유 생산비에서 사료가 차지하는 비율은 점점 높아지고 있어 향후 가격 인상 압박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우유 생산비 중 사료 가격 비율은 2000년 48.2%에서 2021년 54.9%로 6.7%포인트 올랐다. 비용을 감당하지 못한 낙농가들의 폐업도 이어지고 있다. 낙농진흥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낙농가 수는 4600곳으로 전년 대비 133곳(4.0%) 감소했다.
문제는 우유 수요가 줄어도 가격을 내릴 수 없다는 점이다. 현 제도상 우유 제조사는 원유 가격 연동제를 통해 결정된 가격으로 일정 물량의 원유를 의무 매입해야 한다. 저출산과 소비 트렌드 변화로 우유 수요는 줄었지만 판매량과 가격이 보장된 낙농가는 가격을 내리지 않았다. 국내 우유 가격은 원유 가격 연동제가 도입된 2013년 이후 37.3% 올랐다.
정부는 생산비 지원을 통해 가격 안정을 유도할 방침이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가공식품은 수입 원유를 많이 쓰는 특성상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면서도 “사료 자금 융자 지원과 사료 수입 할당관세 적용 등을 통해 생산비를 낮춰 원유 가격 안정을 유도하겠다”고 했다.
정서영 기자 cero@donga.com
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