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26일 인천국제공항 4단계 건설 현장에 안전모와 장갑이 놓여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뉴스1
광주 한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숨진 근로자가 수시간 방치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1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11일 오후 3시43분쯤 광주 남구 봉선동의 H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A씨(58)가 리프트에 깔려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자동화설비 점검을 진행하던 중 약 2m 위에 있던 호이스트(화물용 승강기)가 추락하면서 깔리는 사고를 당했다.
A씨 유족은 사망 추정시간인 낮 1시30분부터 발견 시각인 오후 3시40분까지 현장에 방치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고 당일 A씨는 자재를 싣는 트럭을 공사 현장 앞쪽에 주차해놨었는데, 낮 1시30분까지는 그의 모습이 블랙박스에 찍혔지만 이후로 보이지 않는다. 또 공사장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에서도 같은 시간쯤 장비 상부가 크게 흔들리는 모습이 포착됐다.
A씨 유족은 “오전 7시부터 일을 시작했던 아버지는 블랙박스에 꾸준히 혼자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찍혀있다”며 “사망 추정시간부터 발견까지도 현장에 혼자 계셔야 했을 것이다. 호이스트에 깔린 아빠를 발견하고 도와주고 신고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게 말이 되냐”고 분노했다.
이어 “현장에 안전관리자가 함께 있었거나 30분마다 현장을 점검을 했더라면, 누구라도 아빠를 도와주고 곧바로 구급차를 불렀더라면, 아빠가 2시간 동안 홀로 아프고 쓸쓸하게 계시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너무 괴롭다”고 토로했다.
중대산업재해법에 따르면 원도급처는 안전보건 확보의 의무가 있고, 현장에 안전관리자를 배치하고 감독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실질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또 A씨가 이날 맡았던 업무가 기존에 예정되지 않았던 점도 지적됐다.
유족은 “아빠의 통화기록을 살펴보니, 아빠가 사고를 당한 봉선동 공사 현장은 기존에 예정됐던 업무가 아니었다”며 “이틀 전 급하게 연락을 받고 주말까지 바쳐가며 일했지만 안전장치 관리와 현장 운영은 느슨하고 소홀하게 이뤄져 억울한 죽음을 초래했다”고 말했다.
사업주인 H건설이 유족 측에 여러 번 ‘말 바꾸기’를 하며 장례비 지원 등 책임을 미루고 있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유족 측에 따르면 H건설 공사관리본부 B팀장은 지난 11일 밤 장례식장을 찾아 유가족에게 먼저 “장례비용을 전부 부담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장례식장 퇴관 후 수일이 지난 현재까지도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 결국 A씨 유족 측은 직접 장례비를 부담해야만 했다.
유족은 “도의적으로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한 H건설 측에서 장례비용부터 지급하지 않으며 첫 걸음조차 떼지 못하고 있는데 누구를 신뢰하고 누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단 말이냐”며 “건설현장의 고질적인 문제인 △불법 재하청 △실질적 공사기간 단축 △안전관리 부재와 담당자 처벌의 부재 등이 국민과 정부의 감독 하에 철저하게 준수되고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이번 사고와 관련해 입수한 자료를 토대로 안전과실 여부를 수사하는 중이다.
한편 <뉴스1>은 H건설 측 답변을 듣기 위해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광주=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