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를 영화로 읊다]〈61〉기생의 사랑
영화 ‘비브르 사 비’에서 주인공 나나는 철학자에게 사랑에 대해 묻는다. 알토미디어 제공
명나라 말기 기생 유여시(1618∼1664)는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북경으로 가는 연인 진자룡을 떠나보내며 다음 시를 썼다.
시인의 본명은 양애. 가난한 집안의 딸로 태어나 재상의 첩을 거쳐 기생으로 팔려가 곡절 많은 삶을 살았다. 체격이 자그마하고 가냘팠지만 기백이 대단했고, 시 그림 글씨에 모두 능했다. 시인은 이때 문인 진자룡과 사랑에 빠졌다. 시에선 시험 보러 떠나는 연인과 헤어지기 싫은 마음이 잘 드러난다. 시인은 세상의 통념과 주변의 질시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갈구했다. 하지만 진자룡에겐 이미 아내가 있었고 모친마저 교제를 반대했다. 사랑은 결국 파국을 맞았고 마음 시린 이별 뒤 서로를 그리워했다.
그 후 시인이 선택한 사랑은 당대 최고의 학자로 존경받던 전겸익(1582∼1664)이었다. 남장을 한 채 전겸익을 찾아가 시를 주고받으며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전겸익과 혼례까지 치른다. 마흔 살 가까운 나이 차이에도 두 사람은 죽을 때까지 함께했다. 전겸익이 죽고 난 뒤 시인은 자진했다.
장뤼크 고다르 감독의 영화 ‘비브르 사 비’(1962년)에서 주인공 나나도 사랑을 갈구했다. 라울이란 남자를 만나 배우의 꿈을 접고 매춘부가 됐지만 사랑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영화 제목은 ‘그것이 내 인생’이라는 뜻이다. 전체 12장으로 구성된 영화에는 장마다 제목이 있고, 제11장에는 ‘자기도 모르게 철학을 하는 나나’라는 부제가 붙었다. 나나는 옆 테이블에 우연히 앉은 철학자(실존 인물인 브리스 파랭이 자기 자신을 연기했다)와 사랑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나나는 결국 사랑이 유일한 진리가 아니냐고 묻고, 철학자는 그러기 위해서는 진실해야 하며 성숙해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답한다. 나나는 라울에게 이용당하다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영화 제1장에는 ‘새는 속과 겉이 있는 동물이다. 겉을 떼어내면 속이 남고 속을 떼어내면 영혼이 보인다’라는 글이 나온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간 유여시와 갑작스러운 비극으로 끝난 나나의 삶을 나란히 비교하긴 어렵다. 하지만 기생과 매춘부란 겉을 걷어내고 나면 그녀들에게 남는 건 사랑을 갈구하는 영혼이 아닐까.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