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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원전-무기-철도도 “메이드 인 코리아”… 韓기업 진출 러시[글로벌 현장을 가다]

입력 | 2023-06-21 23:30:00

지난달 30일 이집트 마트루흐주 엘다바에 있는 엘다바 원자력발전소 건설 현장. 높이 5m, 길이 15km의 콘크리트 장벽 너머에서 공사가 한창이다. 엘다바 원전은 한국수력원자력이 13년 만에 따낸 해외 원전 프로젝트로 한국과 이집트 경제 교류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총 공사비 40조 원 가운데 한수원이 3조 원 규모의 건물 및 구조물 시공을 맡았다. 카이로=강성휘 특파원 yolo@donga.com

강성휘 카이로 특파원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북서쪽으로 약 300km 떨어진 지중해 해안 도시, 마트루흐주(州) 엘다바. 왕복 8차로 고속도로 옆을 따라 높이 5m가량 콘크리트 장벽이 계속된다. 차를 타고 시속 80km로 10분 넘게 달렸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다. 장벽 너머로 기중기 굴착기 수십 대가 서 있고 건설자재를 실은 덤프트럭들이 정신없이 장벽 안팎을 오갔다. 가로세로 각 15km 장벽 안에서는 이집트 최초 원자력발전소인 엘다바 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서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13년 만에 수주한 해외 원전 건설 프로젝트다. 마그디 무함마드 알리 마트루흐 주지사는 “한국과 함께 이집트의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현장”이라며 “더 많은 한국 기업의 진출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의 ‘이집트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압둘팟타흐 시시 대통령을 필두로 이집트 정부가 대규모 개발 사업에 집중하면서 원전을 비롯해 방위산업, 철도, 담수화 설비 등 여러 산업 분야에서 이집트 문을 두드린다. 윤석열 정부가 원전 사업 활성화와 방산 해외 진출을 장려하면서 이집트에서 한국 기업 활동은 더욱 활발해지는 분위기다.

이집트 방산시장 후끈

지난해 8월 한수원이 수주한 엘다바 원전 프로젝트는 1200MW(메가와트)급 원전 4기를 건설하는 총 사업비 300억 달러(약 40조 원)의 대형 국책 사업이다. 한수원은 터빈 건물을 비롯해 건물 및 구조물 80여 동을 짓고 기자재를 공급하는 3조 원 규모 사업을 맡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수주 사실을 알리고 시시 대통령이 윤 대통령에게 축전을 보낼 만큼 양국 경제 교류 핵심 사업이다. 한수원은 향후 5, 6호기 사업 수주에도 적극 나설 예정이다.

원전만이 아니다. 국내 기업의 이집트 철도 진출도 활발하다. 김용현 신임 주이집트 대사는 12일 이집트 국제협력부와 ‘카이로 메트로 2, 3호선 전동차 제조 및 공급을 위한 대외경제협력기금 시행 약정’을 체결했다. 지난해 8월 현대로템이 따낸 6억5600만 달러(약 8400억 원) 규모 전동차 공급 사업에 한국 정부가 차관 4억6000만 달러를 제공하는 협약이다. 라니아 알 마샤트 국제협력장관은 “이번 약정 서명은 양국 간 또 하나의 우수 협력 사례”라고 평가했다. 현대로템은 최근 10년 동안 카이로 메트로 1, 2, 3호선 사업에 참여해 약 1조 원어치 전동차를 납품했다.

이집트는 국제 방산시장에서 큰손으로 꼽힌다. 한화디펜스는 이집트 정부와 지난해 2월 K9 자주포 및 K10 탄약운반장갑차 등 2조 원 규모의 ‘K9 패키지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역대 K9 자주포 수출 중 가장 큰 규모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고등훈련기 100대 수출 협상을 진행 중이다. 이집트 정부는 우선 36대 주문 계획을 밝힌 상태다. 강구영 KAI 사장은 올 3월 호주 애벌론 국제에어쇼에서 “이집트는 중동 핵심 국가이자 북아프리카 지역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며 “(올해) 가장 큰 목표는 이집트”라고 밝혔다.

민관 손발 맞춰 현지 공략
시시 대통령은 2014년 취임 이후 지금까지 적극적으로 해외 투자를 유치해 크고 작은 국책 사업을 동시다발로 벌이고 있다. 이집트 중앙은행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이집트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FDI)는 매년 14%꼴로 증가했다. 특히 지난해 FDI는 222억 달러로, 전년(139억 달러)보다 60% 가까이 늘었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이집트 투자액은 전체 이집트 FDI의 3.6% 수준인 7억9000만 달러(약 1조130억 원)다.

지난달 미국 글로벌 경영컨설팅업체 커니는 이집트를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신흥시장 14위로 선정하면서 “이집트 정부는 더 많은 FDI를 유치하고 민간 부문을 활성화하기 위해 다양한 장려책과 의사 결정을 내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 정부도 이집트 진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엘다바 원전 프로젝트는 2021년 12월 한수원이 단독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최종 계약에 난항을 겪었다. 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와 외교부가 지원하면서 수주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산업부와 외교부, 한수원은 현지 리스크 점검과 대응 전략 수립 등에서 손발을 맞췄다. 현대로템 카이로 메트로 수주 과정에서도 국토교통부가 이집트 교통부와 ‘한-이집트 철도 분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등 측면 지원하며 스페인 중국을 꺾고 사업권을 따냈다.

김 대사는 “이집트 정부는 여행 같은 문화 교류뿐 아니라 미래에 초점을 맞춘 경제 협력에도 매우 적극적”이라며 “한국과 이집트 경제 교류 활성화에 더 초점을 두고 현지에서 필요한 지원 및 과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KOTRA에 따르면 이집트 정부는 해양 담수화 플랜트나 전기차 배터리 및 충전 분야 등에서 한국 기업과의 협력을 기대하고 있다.

외환보유액 부족 부작용도
이집트가 외환보유액 부족과 높은 물가상승률 등 경제위기 상황인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이집트 총부채는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92.9%로 200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집트 통계청에 따르면 올 5월 물가상승률은 33.7%로 전월(31.5%)보다 2%포인트 이상 올랐다. IMF는 이집트 실질 GDP 성장률이 2022년 6.6%에서 올해 3.7%로 낮아져 경제가 둔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외환보유액이다. 이집트 외환보유액은 올 5월 346억6000만 달러로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전 409억 달러로 최고치를 찍은 후 계속 줄어들고 있다. 이집트 중앙은행에 따르면 대외 순외화자산 적자는 올 2월 227억6000만 달러에서 3월 244억2000만 달러로 늘었다.

이집트 정부는 IMF에서 부족한 자금을 빌리기 위해 정부 지분 보유 기업 800개 가운데 250여 개사 매각에 나섰지만 사실상 수익을 올리지 못하고 있는 국영기업을 사겠다는 이들이 나타나지 않으면서 난항을 겪고 있다. 이집트 정부는 해외 외환 송금을 강도 높게 통제하면서 해외 출국자가 반출하는 외화에 대한 단속도 대폭 강화하는 고육지책을 펴고 있다.

외화 유출 통제는 벌써부터 크고 작은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이집트 정부로부터 3개월 넘게 대금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 한화디펜스는 지난해 K9 자주포 수출 계약을 맺은 후 8개월 넘게 선수금을 받지 못해 본계약이 미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집트에 진출한 국내 기업 관계자는 “기업으로서 이집트는 매력적인 기회의 땅이면서도 리스크가 분명한 시장”이라며 “단순히 프로젝트를 따내는 일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사업 대금을 회수하는 단계까지 사업 전반에 걸친 위기관리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강성휘 카이로 특파원 yol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