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앞두고 갑작스러운 킬러 문항 적폐몰이 올해 수능부터 치르고 근본적 대수술 해야
이진영 논설위원
‘킬러 문항’이 여러 사람 잡고 있다. 교육부 수능 담당 국장이 경질되고,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감사를 받게 되자 원장이 사임했다. 교육부 차관의 교체설도 나온다. 대통령이 6월 모의평가에서 킬러 문항을 50% 줄이라는 지시를 내렸는데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대통령이 모평 킬러 문항 %까지 지시한 것, 본수능도 아닌 모평, 더구나 아직 결과도 안 나온 모평의 난이도 조절 실패의 책임을 묻는 것 모두 초유의 일이다.
킬러 문항이란 학원가에서 만들어낸 마케팅 용어로 10명 중 1명이 정답을 맞힐까 말까 한 고난도 문제를 뜻한다. 킬러 문항에 대한 대통령의 문제의식은 이렇다. 공정한 수능이 되려면 교육과정 내에서 출제해야 한다. 교육과정 밖의 킬러 문항 출제는 공정하지 않고 학원 배만 불리는 일이다. 킬러 문항이라는 ‘적폐’가 근절되지 않는 배경엔 교육 당국과 사교육 간의 ‘이권 카르텔’이 있다. 따라서 올해 수능에서 킬러 문항을 거의 없애 공정 수능을 실현하고 사교육비도 줄이겠다는 것이다.
킬러 문항으로 상징되는 수능 제도에 문제가 많은 건 사실이지만 킬러 문항 적폐몰이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우선 어떤 문항이 교육과정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 판단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대통령은 ‘국어 비문학 지문’과 ‘과목 융합형 문제’를 킬러 문항이라고 했는데 수능에선 이런 문제 출제가 기본이다. 단편적 지식을 측정하는 학력고사와 달리 수능은 논리력과 사고력을 측정하는 시험이기 때문이다.
킬러 문항이 문제여도 6월 모평 끝나서야 제기할 일은 아니었다. 고등교육법에 따라 대입 전형계획은 4년 전 공표하고, 매년 3월 수능 기본 출제방향을 발표한다. 수험생들은 6월 모평 보고 수시로 갈지 정시로 갈지 결정하는데 9월 모평에서 또 달라진다니 전체 계획이 틀어져버렸다. 대통령의 120개 국정과제와 후보 시절 공약집 어디에도 수능 출제 방향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3월도 아니고 이제 와서 새로운 출제 경향을 얘기하는 건 정부를 믿고 준비해 온 학생들의 신뢰를 저버리는 일이다.
입시에 변수가 생길수록 웃는 쪽은 사교육이다. 입시 전략 다시 짜러 학원 상담을 받고, 킬러 없앤다니 준킬러 배우러 학원으로 달려간다. 대학 잘 다니던 학생들도 ‘물수능’ 기대감에 반수학원을 찾는다. 의도와는 달리 현장은 사교육비를 늘리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카르텔 척결과 수능 대수술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올해 수능부터 무사히 치르는 것이 급선무다. 6월 모평으로 원장 목이 날아갔다. 부원장 대행 체제로 수능을 준비하는 건 턱도 없는 얘기다. 지난해 도입된 통합 수능의 선택과목 간 점수 차를 완화해 ‘문과침공’ 현상을 해소하는 문제로도 정신없던 평가원이다. 서둘러 새 원장부터 임명하고, 교육부 감사도 6월 모평 결과가 나오는 28일까지는 마무리해줘야 한다. 교육부는 킬러 문항 대신 ‘출제 기법 고도화’를 약속했지만 자기도 모르는 새로운 방식을 9월 모평에 딱 한 번 시험해보고 곧장 수능에 적용하는 건 ‘약자인 아이들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다. 올해 수능은 3월에 발표한 대로 치르는 것이 공정과 상식에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