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동떨어진 반지하 대책] 공공임대간 이전 사업도 지지부진
“반지하 탈출하려면 보증금도 월세도 더 늘어나는데…. 경제적인 형편이 어려워 반지하에 세들어 사는데, 지상 이주는 사실상 힘들다고 봐야죠.”(서울 강서구 빌라촌 공인중개사)
지난해 폭우로 반지하 거주자가 사망한 뒤 정부가 반지하 공공임대 세입자를 지상 공공임대로 이사시켜 주는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보유한 반지하 매입임대주택 중 지상 임대로 이전한 집은 10채 중 1채에 그친 것으로 조사됐다. 공공임대 간 이전 사업도 지지부진해 형편이 어려운 반지하 세입자에게는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LH에 따르면 LH가 지난해 9월부터 올해 5월까지 전국에 보유한 지하층 매입임대주택 1810채를 대상으로 지상층 이전 지원 사업을 벌인 결과 지상층으로 이전한 집은 163채(9.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LH가 2년 동안 기존 지하층과 같은 임대 조건을 적용하고, 이사비도 가구당 60만 원을 지원하기로 했지만 실적이 저조한 것.
지역별로 서울은 반지하와 지상층의 평균 보증금과 월세 차가 각각 2942만7000원, 11만3000원이었다. 인천은 보증금 차이가 375만5000원으로 서울 대비 적었지만, 월세 차가 14만1000원이었다. 경기는 각각 1481만3000원, 3만7000원이었다.
현장에서는 지상층과 지하층 임차료 차이가 반지하 세입자들이 감당하기에 부담이 크다는 목소리가 많다. 실제 LH 매입임대주택에 거주하는 사람들만 해도 생계·주거·의료수급자·차상위계층 등이 대부분이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 빌라 밀집 지역에 있는 한 공인중개업소는 “반지하 세입자들은 한두 푼이 아쉬운 사람들인데 빌라 반지하와 지상 월세 차가 30만 원씩 난다”며 “2년간 임차료를 동결해도 다음 임차료를 감당하기가 힘들어 대부분 이사를 꺼린다”고 했다.
월세 지원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목소리가 크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는 반지하에서 지상층으로 이전 시 월 20만 원씩 지원하는데, 지원 기간이 최장 2년으로 한시적이다. 가까스로 월세를 내도 늘어난 보증금이 문제다. 경기 부천시 오정구 원종동 인근 공인중개업소는 “반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려면 월세는 10만 원 차이가 나더라도 보증금 500만 원씩은 더 내야 한다”며 “반지하 세입자들은 몇백만 원의 목돈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반지하 세입자에 대한 지원 규모를 현실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도년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는 “주택도시기금 재원을 활용해 보증금, 월세 등 지원 규모를 기존보다 상향할 수 있다”며 “위험도에 따라 지원금을 차등 지급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현실성 있는 대책이 될 것”이라고 했다.
최동수 기자 firefly@donga.com
이축복 기자 bless@donga.com
송진호 기자 jin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