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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문항 강의 학원, 200개 책상이 50cm 간격 빼곡… 안전 뒷전

입력 | 2023-06-22 03:00:00

[위기의 공교육]
대형학원 ‘135㎡ 이하’ 기준 어겨
단속땐 가벽 세워 강의실 나누기도
수험생들 “화재 대피 어려워 불안”




“200개 넘는 책상이 50cm 간격으로 줄지어 있으니 답답하죠. 강의실 출입문도 2개밖에 없어 대형 화재가 나면 그 많은 학생이 대피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21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유명 학원 앞에서 만난 수험생 이모 씨(21)는 자신이 공부하는 학원 강의실에 대해 불안감을 표출했다.

대형 입시학원들이 법으로 정해진 강의실 면적 기준을 위반하고 ‘콩나물시루’ 같은 공간에서 빽빽하게 학생들을 모아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화재, 지진 등 갑작스러운 재난 상황이 닥치면 대형 인명 피해로 이어질 우려도 나온다. 실태를 관리 감독해야 할 시도교육청은 형식적인 점검에만 그칠 뿐이어서 학생의 안전과 학습권이 위협받고 있다.

현행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 교습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강의실 면적은 각 시도 조례에서 정한 기준을 따라야 한다. 서울시는 강의실 면적을 ‘30㎡(약 9평) 이상∼135㎡(약 41평) 이하’ ‘1㎡당 수용 인원은 1명 이하’로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을 감안하면 이 씨가 다니는 학원은 현행법을 위반하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은 불안감과 불편함을 감수하고 이런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는다. 온라인 수업이 아닌 현장 수업을 들어야만 받을 수 있는 각종 입시 자료들, 킬러 문항 등 수능 문제지들 때문이다. 강남의 한 학원에 다니는 재수생 이모 씨(20)는 “책상이 줄줄이 붙어 있어 옆사람과 팔이 부딪치는 강의실도 있다”고 말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이런 방식의 대형 강의가 불법이고 위험하다는 걸 학원 관계자들도 알지만 이런 강의로 얻는 수익이 크다 보니 잘 개선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엄연한 불법 행위지만 법 위반으로 단속된 사례는 드물다. 강남 유명 입시학원 관계자는 “135㎡ 기준을 초과하는 초대형 강의실을 만든 뒤 단속이 나올 때만 가벽을 세워 강의실을 나눈다. 이렇게 하면 규정을 지킨 것처럼 보여 처벌을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신고가 접수되면 점검을 나가지만 실제 현장을 적발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학원 시설 등을 무단 변경한 사실이 적발되면 1차 5점, 2차 10점, 3차 15점의 벌점을 받는다. 벌점이 31점 이상이면 ‘운영 정지 7일’, 66점 이상이면 ‘등록 말소’ 처분이 내려진다.

입시업계에 따르면 유명 학원의 ‘일타강사’들은 100억∼200억 원대의 연봉을 받는다. 이들을 고용한 학원들은 연 3000억 원이 넘는 수익을 올리기도 한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학원들이 돈벌이에 눈이 멀어 학생을 위험한 공간에 몰아넣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김보라 기자 purp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