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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난에, 농촌 복귀 운동에…中청년들, 부모와 ‘전업자녀’ 계약한다?

입력 | 2023-06-22 16:56:00


중국 상하이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구직에 실패해 고향 산시성으로 돌아온 A 씨(25)는 부모와 함께 살며 최근 ‘전업자녀(全職兒女)’ 계약서를 작성했다. A 씨의 아버지는 중학교 교사이고, 어머지는 옷가게를 하고 있다. 계약서에 따르면 A 씨는 평일 오전 6시에 일어나 출근하는 부모를 위해 아침을 짓고 청소, 빨래 같은 집안일을 하는 조건으로 한 달에 4000위안(약 72만 원)을 받기로 했다. 지난해 중국 도시근로자 월 평균 임금이 5400위안(약 97만2000원)인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금액이다. A 씨는 지무신문에 “아르바이트 사장이 부모님이 된 것일 뿐”이라며 “고향에서 구직 활동을 이어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청년(16~24세) 실업률이 통계 집계 이후 가장 높은 20.8%(5월 기준)로 치솟는 등 최악의 취업난을 겪고 있는 중국 젊은층 사이에 ‘전업자녀’ 현상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전업자녀는 전업주부(專業主婦)에서 따온 말로, 도시에서 구직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부모에게 얹혀사는 청년들을 말한다.


● ‘캥거루족’과는 다른 전업자녀
21일 펑파이, 지무신문 등 중국 매체에 따르면 중국의 대표적 소셜미디어 샤오홍슈(小紅書)에는 전업자녀라는 검색어를 입력하면 관련 글이 4만 건 이상 뜰 정도로 이 현상이 젊은층에서 퍼지고 있다. 관련 게시글은 대부분 전업자녀를 옹호하면서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전업자녀 생활을 할 수 있는지 등을 공유하는 내용이었다.

과거에도 성인이 됐지만 부모의 경제력에 의존하기 위해 부모와 함께 사는 ‘캥거루족’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전업자녀는 스스로 단순히 부모에 ‘기생’해 사는 캥거루족과는 다르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집안일을 하거나 말동무가 돼 드리는 등 부모의 요구를 따르는 조건으로 경제적 지원을 받는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또 현재 일자리는 없지만 당분간 전업녀로 살면서 고향에서의 취업이나 공무원 시험 등을 준비하기도 한다.

펑파이는 “캥거루족은 용어 자체에 비판적인 의미가 강했고 캥거루족 스스로도 주변 시선을 불편해 했지만 지금 전업자녀는 그런 의식이 전혀 없다”고 분석했다. 펑파이는 최근 청년 8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투표에서 40%가 ‘전업자녀가 될 의향이 있다’고 전했고, 전업자녀를 부정적으로 본 응답은 22.5%에 불과했다고 보도했다.


● 美 ‘헬리콥터 맘’-伊 ‘밤보치오니’ 
대만 중앙통신사는 22일 중국 전업자녀 현상에 대해 “최악의 구직난 속에서 중국 당국이 청년을 향해 농촌으로 돌아가라는 캠페인을 벌이면서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중국 정부는 최근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대학 졸업자를 대상으로 농촌 ‘하방운동’을 벌였다.

2023.06.19. 베이징=AP/뉴시스

중앙통신사는 특히 중국 당국이 전업자녀라는 용어를 통제하지 않고 있는 점에 주목했다. 2021년 ‘바닥에 드러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탕핑 현상이 유행하자 이 말을 금기어로 정했던 당시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중앙통신사는 “중국 당국은 젊은층이 구직에 실패해 집에 머물면서도 탕핑이 아닌 전업자녀라는 새로운 긍정적 개념에 안심하게 만들려는 의도”라면서 “전업자녀 (현상의) 본질은 실업”이라고 지적했다.

엔데믹에도 경제 회복이 예상보다 더디자 비슷한 현상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미국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미 18~29세 중 부모 집에서 사는 비율은 2010년 44%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2020년 52%까지 치솟았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달 초 “팬데믹 이후에도 함께 사는 자녀를 위해 자녀 주변을 맴돌면서 개입하려는 ‘헬리콥터 맘’(과잉보호하는 엄마)이 직장에까지 나타났다”면서 “이들은 회사에서 자녀의 업무 갈등을 중재하는 일에까지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이탈리아에서는 부모에게 얹혀사는 30~40대 자녀를 부르는 신조어 ‘밤보치오니(bamboccioni·큰 아기)’가 만들어질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 이탈리아 통계청 집계에 따르면 18~34세 가운데 64.3%가 부모와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