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의 쇄신을 위해 출범한 혁신위원회가 벌써부터 내년 총선 ‘공천룰’을 둘러싼 갈등에 휘말리고 있다. 김은경 혁신위원장이 20일 첫 회의 때 “정당 공천 과정에서 현역의원으로 대표되는 기득권 체계를 혁파하겠다”고 언급한 것을 두고 비명(비이재명)계는 “비명계를 겨냥한 총선 물갈이를 의도한 것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여기에 김 위원장이 “혁신위에 추가로 현역의원을 인선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그럼 우리 입장은 누가 대변하냐”는 비명계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친명(친이재명)계 지도부는 “혁신위가 공천룰도 다룰 수 있다”며 관전하는 입장이라 혁신위 역할을 둘러싼 계파 갈등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 김은경의 ‘공천’ 언급에 현역 ‘긴장’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 2022.10.20/뉴스1 ⓒ News1
비명계 조응천 의원은 22일 MBC 라디오에서 “(김 위원장이) 느닷없이 공천을 얘기하고 현역의원을 기득권이라고 한다. 기득권 타파, (친명 강성 지지층이 요구하는) 대의원제 폐지 이런 쪽으로 연결이 되는 것”이라며 “혁신위의 본령은 이재명 체제의 민주당 1년을 평가하는 건데, 이게(혁신위가) 제대로 굴러가겠느냐”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혁신위 첫 회의에서 “정당 공천 과정에서 현역의원으로 대표되는 기득권 체계를 혁파하고 참신하고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는 공정하고 투명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며 공천 시스템 개편 가능성을 언급한 점을 비판한 것. 조 의원은 ‘이미 각본이 짜였다고 보느냐’는 진행자 질문에 “강한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한 비명계 초선 의원도 “김 위원장의 공천 관련 발언은 비명계를 축출하기 위한 판을 짜둔 것”이라고 했다. 다른 비명계 중진 의원 역시 “혁신위가 공천을 언급하는 건 계파갈등을 조장해 당에 폭탄을 터뜨리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당 내에선 “차도살인”이란 표현까지 나왔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친명 입장에선 내심 김 위원장이 이재명 대표를 대신해 공천의 칼을 제대로 휘둘러주길 기대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오른쪽에서 4번째)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혁신기구 발족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News1
실제 지도부는 혁신위에 전권을 준 만큼 혁신위가 공천 규정까지 다룰 수 있다는 입장이다. 친명 핵심이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인 김영진 의원은 전날 YTN라디오에서 “국민이 원할(만족할) 때까지 (당을) 바꿔야 한다는 단계까지 간다면 혁신위원장이 (공천룰도) 손댈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친명계인 안민석 의원도 22일 YTN라디오에서 “총선 앞두고 혁신의 핵심은 인적 혁신, 쉽게 말하면 물갈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지도부 관계자는 “혁신위가 ‘친명 논란’에 휩싸인 상황에서 공천이 주요 의제로 떠오른 것에 대해 이 대표도 곤란해하고는 있다”고 말했다.
● 비명 “혁신위에 추가 현역 의원 포함해야”
비명계가 김 위원장의 공천 관련 언급에 크게 반발하는 데엔 현재 혁신위에 비명계 인사가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혁신위가 20일 발표한 1차 명단 중 현역 의원은 친명계인 당 사무부총장 이해식 의원 뿐이다. 이에 친문(친문재인) 등 비명계에선 2차 혁신위원 인선 때 추가로 현역 의원을 포함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지만, 김 위원장이 불가 입장을 강하게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도부 의원은 “김 위원장은 현역의원이 혁신위에 많이 포함될수록 혁신 동력이 떨어질 거라는 생각이 확고하다. 인선을 더 강요하면 위원장직을 맡지 않겠다는 배수진까지 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비명계 재선 의원은 “아무 소통 없이 혁신위가 9월에 일방적으로 혁신안을 발표하고 나면 돌이킬 수 없는 것 아니냐. 밀실 합의가 될 수 있다”며 “초선, 재선, 3선에서 대표 의원들을 한 명씩 혁신위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규영 기자 kyu0@donga.com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