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건강, 정서 문제 등 마음(心) 깊은 곳(深)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다룹니다. 일상 속 심리적 궁금증이나 고민이 있다면 이메일(best@donga.com)로 알려주세요. 기사로 알기 쉽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귀여움’의 힘(1)
‘댕댕이(멍멍이)’ ‘뽀시래기(‘부스러기’의 전라도 방언)’ ‘커엽다(귀엽다)’ 등 귀여운 대상을 지칭하거나 표현하는 새로운 말들이 유난히 많다. 인간은 왜 이토록 귀여운 것들에 관심이 많은걸까.그 이유를 알아보자. pixabay(@Darong_family)
볼 통통·뒤뚱뒤뚱…‘아기다움’에서 찾는 귀여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끼 동물을 보면 나도 모르게 빙그레 웃음 짓게 된다. 몸에 비해 큰 머리, 짧은 팔다리, 작은 코와 입, 보들보들할 것 같은 촉감…. 귀여운 새끼 동물은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는 마력이 있다.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실 이런 특징은 아기의 특징과 똑같다. 동그란 얼굴, 통통한 볼, 오동통한 손과 발, 큰 눈, 작은 코와 입, 보들보들한 촉감 등이 말이다.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오스트리아 동물학자인 콘라트 로렌츠는 이런 특징을 ‘아기 스키마(baby schema)’라고 개념화했다. 아기를 떠올리면 전형적으로 떠오르는 신체적 이미지를 말한다.
귀엽다는 감정을 불러오는 대상의 시각적 특징을 살펴보면 아기와 공통점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게티이미지뱅크
인간은 아기 스키마의 전형적 특징이 도드라질 수록 귀여움을 강하게 느끼는 경향이 있다. 아래 사진을 보자. 어떤 아기가 가장 귀여워 보이는가?
아기의 신체적 특징이 도드라진 얼굴 일수록 사람들은 귀여움을 더 많이 느끼게 된다. 미국국립과학원회보
연구팀은 실험에 참가한 대학생 122명에게 어떤 사진이 가장 귀여운지 고르라고 했다. 예측 가능하듯 가장 오른쪽에 있는 사진을 고른 학생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또 아기 사진에서 귀여움을 강하게 느낀 학생일수록 ‘보살펴 주고 싶다’고 답한 비율이 높았다.
귀여운 것에 끌리는 건 본능
아기 스키마 개념이 제시된 이후 이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많은 연구가 이어졌다. 수많은 후속 연구에 의하면, 귀여운 것을 보면 ‘보살펴 주고 싶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이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라고 볼 수 있다. 어느 생명체나 다음 세대를 잘 키워서 종족을 보존해야 한다는 본능이 있기 마련인데, 인간은 아기의 특징을 가진 대상을 보면 생존과 종족 보존의 본능이 자극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기다운’ 특징을 일부라도 가지고 있는 대상을 보면 ‘귀엽다’는 긍정적인 정서 반응이 나타나고,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귀여운 대상을 봤을 때 뇌에서 일어나는 작용을 보면, 귀여움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 얼마나 즉각적이고 본능적인지 알 수 있다. 모튼 크링겔바흐 영국 옥스포드대 의대 정신의학과 교수 연구팀은 성인 95명에게 아기 얼굴 13장과 성인 얼굴 13장을 각각 보여줬다. 이들이 사진을 보는 동안 자기뇌파검사(magnetoencephalography·MEG)를 통해 뇌에서 일어나는 작용을 기록했다.
아기 사진을 볼 때(위)와 성인 사진을 볼 때(아래) 뇌에서 반응하는 부위가 각각 다르다. 아기를 볼 땐 기분 좋은 감정을 일으키는 영역이 활성화 된다. PLOS ONE
아기를 보는 즉시 0.13초 만에 뇌에서 긍정적 반응이 나타난 것은 어떠한 판단이나 사고를 거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기라는 대상은 합리성을 따져야 하는 주제가 아닌, 생존·번식이라는 본능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내측 안와전두엽은 아기의 얼굴을 특별하게 식별하고, 보살피도록 주의를 기울이도록 만든다”며 “또 긍정적인 정서를 유발해 아기와 감정적으로 유대하는 데에도 관여한다”고 설명했다.
“귀여운 건 보호해야 해!” 높아지는 집중력
이런 특징 때문에 귀여운 대상을 보면 보호본능이 발동하고, 주의 수준이 높아지게 된다. 경계 태세에 들어가면서 결과적으로 집중력이 높아지는 효과를 볼 수 있다.‘아기 스키마’를 가지고 있는 새끼 동물을 보면 다 큰 성체를 봤을 때보다 세심함을 필요로 하는 작업에서 높은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다. 동아일보 DB
귀여운 새끼 동물 사진을 본 그룹이었다. 아기 스키마 특징을 가진 새끼 동물을 보자, 보살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면서 아기를 다룰 때 필요한 조심성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작고 연약한 아기를 돌볼 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행동하기 때문에, 이때 뇌에서는 주의력을 끌어올려 행동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통제하게 된다”고 했다.
따라서 세심한 집중력이 필요할 때 귀여운 동물이나 아기 사진을 보면 도움이 될 수 있다. 사무실 책상이나 공부방에 귀여운 인테리어 소품을 배치해 두는 것도 방법이다. 기분도 좋아지고, 집중력도 얻을 수 있는 쉽고 간단한 방법이다. 다만 세심함을 필요로 하는 작업에 국한돼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굵직한 계획을 짜는 등 미시적인 ‘나무’보다 거시적인 ‘숲’을 봐야하는 상황에서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다음주 기사에서는 ‘귀여움의 힘’ 2부로 △귀여운데 왜 깨물어 주고 싶을까 △귀여워야 멸종 당하지 않는다 △본능을 기반으로 한 캐릭터 산업 등을 다룰 예정입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