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리 에세이스트
최선을 다해 학우들의 글을 읽고 보살핀다. 화마가 지나간 자리에 기적처럼 남은 벚꽃 한 송이를 본 희망, 호스피스 병동에서 나무처럼 아내 손을 잡고 지키던 어느 노인의 배웅, 문맹인 어머니가 불러주던 이야기를 받아써 주다 깨친 인생의 슬픔, 망해 가는 가게를 지키며 김밥을 말다가 자식들 생각에 ‘그래도 살아야지’ 퍽퍽하게 삼키던 김밥의 맛, 표정이 드러나는 게 두려워 여전히 마스크를 착용하는 판매원의 심정, 외국인 노동자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주며 깨달은 편견의 부끄러움, 병상에서 생사를 오가면서도 자기 존엄을 지키려는 최전선의 글쓰기, 공장 기계 소리를 백색소음 삼아 글 쓰는 야간 노동자의 빼곡한 노트. 올해에도 260개의 인생이 나를 통과했다.
대학 시절 나의 스승은 사상가 이탁오의 말을 가르쳐 줬다.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고, 스승이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 서로에게 스승이자 친구가 되는 사우(師友) 관계야말로 진정 좋은 관계임을. 그 참뜻을 이제야 깨닫는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 우정에도 나이가 없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이해의 지평을 넓히며, 우리는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된다. 가르치며 배운다. 우리 마주친 이 길에서 친구 같은 스승이 되는 것이 종내 나의 소망. 가르치며 배우며 우정의 길을 함께 걷는다. 나에겐 스승 같은 친구들이 이다지도 많다.
고수리 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