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1990년대 ‘생명 연장의 꿈’이라는 광고 문구는 많은 사람들을 설레게 했다. 그동안 먹고살기 힘들었던 보릿고개 시대를 지나 이제 우리도 생명 연장을 꿈꾸고 “장수 만세”를 외칠 수 있는 시대를 맞이하게 됐으니까. 그리고 지금 우리는 ‘백세시대’라는 환상 안에서 살고 있다. ‘환상’이라고 얘기하는 이유는 ‘우리가 진짜 100세까지 살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님도 100세까지 못 사셨고, 첨단 의학의 도움을 모두 받았을 대기업 회장님들도 100세까지 못 사셨는데 과연 지금 이 시대를 ‘백세시대’라고 할 수 있을까? 괜히 ‘백세시대’라는 환상에 취해서 “인생 긴데 천천히 하지 뭐!” 이런 나태한 마음이 나를 지배할까 봐 걱정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올해 초 ‘100세의 철학자’라고 불리는 김형석 교수 다큐에 참여하게 됐다. 김 교수는 1920년생으로 올해 103세가 되셨고 지금도 꾸준히 주 2, 3회씩 강의도 하시고 글도 쓰신다. 김 교수와 인터뷰하면서 “교수님, 오래 살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라는 우문을 던졌는데 “건강한 사람이 오래 사는 게 아닙니다”라는 충격적인 답변을 주셨다. “조심조심 사는 사람이 오래 사는 것 같아요. 친구들 중에 건강하다고 주말마다 등산 다니고, 새벽마다 조기 축구 하던 친구들은 지금 다 세상을 뜨고 없어요. 90세 넘었을 때, 친구들이랑 만나서 얘기해 보니까 모두 어렸을 때 몸이 허약했던 친구들이에요. 몸이 허약하니까 부모님께서 항상 조심조심 살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거든요. 그래서 조심조심 살다 보니까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 같아요.”
건강은 절대 과신하면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조심조심 사는 사람이 오래 산다니, 교수님의 말씀은 나에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그렇게 김 교수의 일상을 담은 방송은 시청률이 잘 나왔고 사람들이 실제 100세가 넘은 분들의 생활을 궁금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