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문항 배제 이미 올3월 발표된 건데 야당, 업체들 ‘갑툭튀’ 프레임으로 저항 교육장관이 대통령 개혁의지 이해하고 충실히 전파-이행하려 했는지도 의문
이기홍 대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공교육 교과 과정 내 수능 출제” 발언 직후 대재앙이라도 닥칠 듯 최고 강도의 공격을 퍼붓던 야당과 좌파 진영은 이재명 대표도 대선 때 킬러 문항 폐지를 공약했다는 사실이 지적되자 공격 포인트를 바꿨다.
수능을 5개월 앞두고 난데없이 문제를 제기했다는 이른바 ‘갑툭튀’ 비난이다. 민주당이 비난에 앞서 1분만 시간을 내서 네이버 검색을 해봤다면 어땠을까.
<제목: “올 수능 킬러 문항 없앤다” 본문: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문영주 수능본부장은 “이른바 ‘킬러 문항’으로 불리는 초고난도 문항을 출제하지 않으면서 변별력은 갖출 수 있도록 ‘적정 난이도’ 달성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킬러문항 없앤다’를 제목으로 뽑은 기사도 수두룩하다.
물론 수험생이나 학부모들은 눈여겨보지 않았을 수 있다. 그러나 “수험생이 불쌍하다”는 입시학원 강사들이 3월 당시 평가원 발표를 접하지 못했을 가능성은 제로다.
‘우리 식구인 교육부가 설마 황금 밥그릇을 없애겠어’라며 평가원 발표를 레토릭 차원으로 무시한 채 “킬러 문항에 인생이 걸렸다”고 수험생들을 계속 꼬득이다 막상 실제 현실로 다가오자 ‘수능 5개월 앞 갑툭튀’ 프레임을 만들어 저항하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지시한 건 지난해 말부터고 올 3월 평가원이 공식 발표했는데도 이 분야가 생업인 인사들이 마치 처음 듣는 얘기인 것처럼 연기를 한다.
윤 정부가 시동 건 교육개혁의 핵심은 네 가지다. 즉, △천문학적 사교육비를 절감할 수 있는 공교육 혁신과 입시제도 개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로 가르치고 있는 수구 좌파세력으로부터 교육을 구출하는 일 △인구 감소에 따른 지방 대학의 선별적 소생과 퇴출 대학 용도 변경 △생성형 인공지능 시대 첨단산업 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새로운 산업 역군을 양성하는 교육 과정과 평가 혁신 등이다.
이번 교육부의 움직임에도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 많다. 대통령의 올초 지시를 담당 국장이 고의로 이행 거부한다는 것은 공무원사(史)에 남을 만큼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드는 의문은 이주호 장관이 대통령의 의지와 염원의 강도를 정확히 이해했는지, 그리고 이를 실무진에 충실히 정확히 전달하고 실행을 위해 노력했는지 여부다.
대통령이 중대한 지시를 했으면 장관은 올초부터 국민에게 반복해서 설명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동안 이 장관이 국민에게 수능에 대해 밝힌 적은 없다. 신년 업무보고 후 10대 교육 개혁방안 발표에도, 지난달 이를 3대 과제로 압축해 발표했을 때도 없었다.
대통령의 수능 관련 지시가 단발적 개입 차원이 아니라 교육개혁에 대한 지속적이고 강한 의지의 산물임을 이해하고 있었다면 이 장관의 16일 첫 브리핑 내용도 달랐을 것이다. “대통령이 학교수업 밖에서 나오는 문제는 출제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브리핑하는 대신 “변별력을 갖추되 공교육 교과과정 내에서 출제하라는 대통령 방침이 올초 평가원에 전달됐고 이에 따라 올 3월 평가원이 킬러 문항 폐지를 공표했는데도 이번 모의고사에 반영되지 않은 데 대해 대통령이 질책했다”고 발표했을 것이다.
2020년 아시아교육협회 이사장 재직 시 에듀테크 관련 기업으로부터 협회가 1억2400만 원의 기부금을 받았고, 지난해 교육감 선거 때 에듀테크 임원과 직원에게서 각각 500만 원씩의 후원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 일이지만 인사청문회에서 논란이 됐다.
장관과 더불어 교육개혁을 지휘할 한축인 국가교육위원회 이배용 위원장은 사학과 교수로 이화여대 총장을 거쳐 수십 년간 정부 산하 기관, 위원회 등에서 다양한 자리를 누려온 인물이다. 그 어떤 이해 당사자도 눈에 밟혀 하지 않고 백년대계를 만들어 가야 하는 자리의 적임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소리가 진작부터 나왔다.
역대 정부는 대학총장 출신 등을 교육장관에 많이 기용했지만 다들 제대로 개혁을 못했다. 어차피 교육계로 돌아갈 사람들이 교육계의 인심을 잃을 일을 벌이기가 어려웠다. 오죽하면 군 출신 장관이 제일 나았다는 말이 돌 정도다. 그 정도로 교육개혁 수장은 어려운 자리다. 더구나 기구축소로 대통령실에 교육 담당 수석도 없다.
교육개혁은 우리사회의 중차대한 개혁 과제다. 연간 26조 원의 사교육비는 저출산 문제를 비롯한 구조적 중병을 악화시키고 있다. 구조조정 전문가를 영입해 힘을 실어주고, 검찰이 달라 붙어도 교육계 커넥션은 쉽게 깨기 어렵다. 이번에 손댄 수능 킬러문항은 수만 개 뿌리가 얽혀있는 사교육 문제의 줄기 하나에 불과하다.
더구나 한국 사회에서 우파 정부 주도의 개혁은 난이도가 몇 곱절 올라간다. 정권이 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좌절시키려는 야당과 좌파 진영의 선전선동술이 우파와는 질적 양적으로 비교도 안 되게 간교하고 공격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수 정부의 개혁이 성공하려면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와 정교한 전략, 그리고 흠결 없고 유능한 야전 사령관이 필요하다. 특히 중요한 것은 개혁 지휘관들의 도덕적 우위다.
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