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 초고난도 문항(킬러문항) 배제 논란과 관련해, 임종성 전 서울시립대 영어학 교수는 “고등학생의 배경지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의 지문이 출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수능 공부는 ‘문제풀이’나 ‘정답을 찾는 기술’을 익히는 과정이 되고 말았다”고 개탄했다.
임 전 교수는 23일 보도된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5년간 수능 영어에서 ‘마의 구간’이라고 불리는 31~40번 지문 대부분은 미국 대학 전공서적 또는 석·박사 전공서적들에서 인용됐다고 밝혔다. 분야는 인류학, 교육공학, 심리학, 유전공학, 경제학 등 광범위하다.
그는 “수능에 출제된 문제 지문들이 상당히 높은 수준이어서 그걸 풀어낸 아이들이 영어를 꽤 잘하는 줄 알았다”며 “그러나 실상은 아니었다. 아이들은 수능 지문을 봐도 해석을 못 하니 빈칸에 들어갈 정답 찾는 기술만 배우고 있었다”고 했다.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모의평가를 치르는 학생들 2023.06.01. 뉴시스
임 전 교수는 “전공서적, 심지어 석·박사들이 읽는 책 내용을 지문으로 출제하기 때문에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조차 해석하기가 어렵다”며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제자에게 수능 문제를 보여주면서 미국 SAT(미국 대학수능시험)와 비교해 보라고 했더니 미국의 GRE(미국 대학원 입학자격시험)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상황이니 아이들이 사교육을 통해 정답 찾는 기술을 배운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해 영어과목에서 학생들이 가장 많이 틀린 문제 1위의 오답률은 83%였다. 이 정도면 고등학생이 풀 수 없는 문제를 낸 것”이라며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학생에게 이 문제를 풀게 했더니 틀린 영상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문제 지문의 출처는 ‘The Pivotal’이라는 책인데, 아마존에서 지구과학 전공서적으로 분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공자들이 아니고선 알 수 없는 개념이다. 고등학생들이 이 내용을 어떻게 이해하고 문제를 풀 수 있겠냐”며 “아이들에게 수능은 공부가 아닌 문제풀이일 뿐이다”고 거듭 지적했다.
“고교생 지식 수준으로 문제 내도 충분히 변별력 있어”
교육계에서는 ‘킬러 문항’을 배제하면 어떻게 변별력을 가질 수 있느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에 대해 임 전 교수는 “미국 SAT는 교과과정 수준과 그에 맞는 주제로 출제하고 있다”며 “교과서인 능률출판사 영어책 목차를 보면 여행, 자기계발 등 학생들이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런 주제와 교과서 수준의 문제를 출제해도 충분히 변별력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임 전 교수는 “(우리나라는)아이들이 영어 실력을 기를 수 없도록 가르친다. 대학 입학생들을 보면 문법을 아예 배우지 않은 아이들 천지”라며 “시험이란 게 아이들의 잠재력을 키울 수 있는 도구가 돼야지, 어떻게 하면 이 아이와 저 아이를 차별화시키느냐가 핵심이 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pt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