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로 탑승객 5명 전원 사망한 것으로 파악된 오션게이트의 타이태닉 잔해 관광 잠수함 ‘타이탄’ 모습.
해저 4000m에 가라앉아 있는 타이태닉호 잔해 관광에 나섰던 ‘타이탄’ 잠수정이 교신 두절 4일 만에 산산조각이 난 채 일부 잔해가 발견됐다. 미국 구조당국은 잠수정 탑승자 5명 전원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타이탄은 해수면의 약 400배에 달하는 해저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치명적인 ‘내파(catastrophic implosion)’로 파괴된 것으로 파악됐다. 내파는 외부 압력으로 구조물이 파괴되는 일종의 내부 폭발이다.
존 모거 미 보스턴 해안경비대 소장은 22일(현지 시간)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잠수정 잔해가 타이태닉 뱃머리에서 약 488m 떨어진 해저 바닥에서 발견됐다”며 “탑승객 가족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 타이태닉호 488m 지점서 잔해 발견
미 해저탐사 업체 오션게이트 익스페디션이 운영해온 잠수정 타이탄은 18일 오전 8시 미 매사추세츠주 케이프코드 해안에서 약 1450km 떨어진 지점에서 잠수해 1시간 45분 만에 통신이 끊겼다.그로부터 4일 후인 22일 오전 캐나다 심해 원격 조종 로봇은 수심 4000m 해저에서 타이탄의 일부 잔해를 발견했다. 타이태닉호 뱃머리에서 불과 488m 떨어진 지점이었다. 처음 발견된 잔해는 잠수정 외부 선체의 꼬리 부분이었다. 이 선체는 동그란 캡슐 모양으로 탑승객들이 머물던 곳이다. 이어 선체 앞부분 등 총 5조각이 추가로 발견됐다. 구조당국은 발견된 선체 부위와 파열 상태 등을 통해 탑승객 전원이 사망한 것으로 판단했다.
미 해안경비대 존 모거 소장이 22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보스턴=AP뉴시스
모거 해안경비대 소장은 시신 수습 가능성에 대해 “해저 상황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다”며 말을 아꼈다. 4일 간 구조작업에 참여했던 대원들은 기자회견장 뒤편에서 연신 눈물을 닦기도 했다.
● “심해 압력에 선체 찌그러진 듯”
사고 경위는 선체 잔해 수거 후 정밀 조사를 통해 밝혀야할 부분이지만 현재로선 심해 압력에 선체가 찌그러지듯 파괴됐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데이비드 마르켓 전 미 해군 잠수함 사령관은 NBC 방송 인터뷰에서 “그 정도(해저 4000m) 수준의 압력을 사람 위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올라와 있는 것과 같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압력”이라고 말했다.잠수정 폭발한 시점에 대해선 교신이 두절된 직후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미 해군 고위 당국자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해군은 18일 교신이 끊긴 직후 일급 군사 음향 탐지기를 통해 폭발음 비슷한 소리를 감지했다. 소리의 발원지도 잠수정 잔해가 발견된 장소 인근이었다. 해군은 이 정보를 해안경비대와 공유했고 수색팀이 이 이 정보를 바탕으로 수색 범위를 좁힌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해안경비대 측은 “사고 관련 시간별 상황은 아직 명확하게 말할 수 없다”며 “잠수정이 폭발할 정도의 소리라면 부표형 음파탐지기에도 포착될 수 있는데 현재로선 확인된 게 없다”고 했다.
● 심해 안전규정 준수 여부 쟁점 될 듯
타이탄이 해저 압력을 견디지 못한 이유에 대해선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 정전 등 다양한 이유가 잇을 수 있지만 일각에선 2021년부터 운항을 시작해 온 타이탄이 수차례의 심해 잠수를 진행하며 선체의 강도를 유지해주는 티타늄 탄소 섬유에 ‘피로 균열’이 발생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때문에 타이탄의 운항사 오션게이트의 안전 의무 이행 여부가 쟁점이 될 전망이다. 오션게이트의 전 임원은 타이탄이 여러 차례 심해 잠수 안전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고 여러 차례 경고해온 것으로 전해졌다.1997년 영화 ‘타이태닉’ 제작 과정에서 타이태닉호 잔해를 탐사했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이날 A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타이태닉 참사와 비슷한 일이 또 일어났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 타이태닉호 선장은 반복적 경고를 무시하고 흐린 날 밤에 전속력으로 유빙을 향해 돌진해 많은 승객이 숨졌다. 이번에도 그런 안전 경고를 무시한 유사한 비극이 일어났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