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의 한 커피숍 유리창에 러브버그가 붙어있다.
“밥 먹는 동안에만 여섯 마리쯤 봤어요.”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근무하는 한 직장인은 식사 중에 낯선 벌레가 등장해 깜짝 놀랐다.
지난해 7월 경기 고양시와 서울 은평구 등 수도권 서북부 일대에 출몰했던 러브버그(사랑벌레)가 올해는 은평구를 넘어 서대문구, 종로구, 성동구까지 점령했다. 출몰 시기는 빨라졌고 발견 범위는 더욱 넓어졌다.
22일 실태를 조사한 국립생물자원관 박선재 연구관에 따르면, 지난 15일경부터 서울시에 민원이 계속 접수되고 있다. 작년보다 열흘에서 2주 정도 빠른 관측이다.
러브버그는 털파리과에 속하는 1㎝남짓 크기의 절지동물이다. 주로 암수가 짝짓기하는 형태로 목격돼 이런 이름이 붙었다. 정식 명칭은 ‘붉은등 우단털파리’(Plecia Nearctica·플리시아 니악티카)다.
이 벌레는 사람에게 별다른 피해를 끼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생태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익충(益蟲)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벌레에 친숙하지 않은 도시인들은 그 자체로 혐오감을 느낄 수 있다.
기자가 지난 1주간 퇴근길에 들은 ‘비명’ 소리만 여러 차례다. 퇴근 시간 종로의 한 횡단보도를 건너던 여성이 “꺅~!”하고 소리를 질렀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러브버그가 몸에 찰싹 달라붙었던 것이다.
광화문 인근의 한 회사는 사옥 내 러브버그 방역 지침을 공지하고 “사무실, 회의실 내부에서 발견할 경우 연락 달라”고 안내했다. 전 층 남녀 화장실에 방충망 및 곤충 퇴치기도 설치했다.
23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의 한 커피숍 유리창에 러브버그가 붙어있다.
다만 러브버그는 독성도 없고 벌이나 모기처럼 쏘지도 않는다. 질병을 옮기지도 않는다. 박선재 연구관에 따르면, 이 벌레는 유충시기에는 지렁이처럼 토양의 낙엽이나 유기물을 분해하는 역할을 하고, 성충이 되면 벌이나 나비처럼 이 꽃 저 꽃으로 꽃가루를 옮겨 주는 역할을 한다.
당국에서 대규모 화학적 방재를 하기 난감한 이유다. 박 연구관은 이날 YTN뉴스Q에서 “러브버그를 박멸하고자 화학적 방제를 하게 되면 이들의 천적이 될 수 있는 다른 여러 절지동물을 같이 죽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 연구관은 “지금까지 보고된 바에 의하면 이 벌레가 병원균을 옮긴다거나 아니면 모기와 같이 직접 사람들을 공격한다거나 직접적인 피해를 나타내는 습성은 보고된 바 없다”고 안심시켰다.
갑작스러운 대발생 이유에 대해선 “과거에는 대발생 사례가 없고 작년에 처음 보고 됐기 때문에, 아무래도 외래유입종일 가능성을 두고 집중 연구하고 있다”며 “이상적 서식지 조건이 마련돼서 대발생했을 가능성이 있고, 외래에서 유입돼 아직까지 천적이 없는 상황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범위가 넓어진 것은 “처음 대발생했을 때 경쟁에 의해서 서식지가 확산됐을 수 있다”며 “외래에서 유입돼 아직 천적이 없어 분포지역이 확산하는 경향을 보일 수도 있다”고 했다.
이 벌레는 1~2주 지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으로 예측했다. 박 연구관은 “성충은 수컷의 경우 3~5일, 암컷은 최장 1주일 산다”며 “한 달 이내에는 수그러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직은 화학적 박멸보다는 그에 앞서 지역별로 물리적, 친환경적 방법으로 퇴치할 것을 권장했다.
가정에서는 창문을 잘 닫아두고, 집 안으로 들어올 경우 모기 퇴치제를 뿌리면 수초 내에 죽는다. 움직임이 둔하기 때문에 청소기로 처리할 수도 있고, 물을 뿌리면 날개가 젖어 활동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분무기를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pt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