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신안군 비금도 1851년 비금도에 佛 어선 난파… 선원 구하러 몽티니 영사 방한 샴페인과 막걸리 나누며 첫 만남… 파리 박물관에 당시 술병 전시 세계적 예술가 찾는 신안 예술섬… 예술-문화교류의 섬으로 변신 중
전남 신안군 비금도 그림산에서 바라본 다도해와 염전 풍경.
《‘날아오르는 새의 섬.’ 전남 신안군 비금도(飛禽島)는 하늘에서 보면 날개를 펼친 큰 새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신안의 설악산으로 불리는 그림산의 절경과 끝없는 명사십리 해변으로 유명한 비금도가 ‘한국과 프랑스가 처음 만난 섬’ ‘샴페인의 섬’으로 주목받고 있다. 비금도에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샴페인과 막걸리의 첫 만남
해변이 하트 모양으로 보이는 비금도 하누넘 해수욕장.
전남 신안군 비금도 명사십리 해수욕장에서 한국과 프랑스의 역사적 첫 만남을 기억하며 샴페인 한잔.
해안에 좌초된 나르발호 선원들은 200년 전 하멜이나 처형된 프랑스 신부처럼 감옥에 갇히거나 목숨을 잃을 것이란 공포에 떨었다. 당시 조선의 상황은 신유박해(1801년), 기해박해(1839년)로 국내에 비밀리에 입국해 활동하던 프랑스 선교사들이 대거 처형당해 이방인에 대한 경계심이 높았던 상황. 그래서 9명의 선원이 소형 배를 타고 탈출해 4월 19일 중국 상하이 프랑스 영사관을 찾아가 구조를 요청했다.
비금도에 도착한 몽티니 영사는 걱정과는 달리 선원들이 주민들로부터 쌀 등 음식을 제공받고, 숙소에서 당국의 보호 아래 잘 지내는 것을 보고 안심했다고 한다. 비변사등록과 일성록에 따르면 조선의 조정에서는 비금도에 난파한 프랑스 선원들이 중국으로 갈 수 있도록 배 2척을 마련해 주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몽티니 영사는 5월 2일 비금도를 관할하는 나주목사를 만난 자리에서 한국 정부에 고마움을 표시하고, 프랑스 선원들을 직접 배에 태워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떠나기 하루 전날인 2일. 몽티니 영사와 나주목사는 송별회를 가졌다. 몽티니 영사는 배에서 샴페인과 와인 수십 병을 꺼내 왔고, 조선인들은 도자기와 항아리에 담긴 전통술을 가져왔다.
“선실에서 조선의 관료들에게 내일 출발에 필요한 식량을 요청하고 나서, 다시 갑판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우리 배의 50여 명의 선원이 다양한 음식이 차려진 작은 테이블(‘소반’을 칭하는 듯)을 각자 앞에 두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 사이로 수많은 한국인들이 항아리 단지와 잔을 들고 다니면서 술을 따라 주었습니다. 우리도 그들에게 술을 대접하고 함께 마셨습니다. 정말 그림처럼 아름다운 식사(pittoresque repas)였습니다.”
당시 몽티니 영사는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에게 보낸 보고서에 비금도에서의 송별연 장면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조선인들이 따라 주었다는 항아리 단지에 담긴 술은 막걸리로 보이며, 독주도 마셨다는 말로 보아 소주도 제공됐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한국 사람이 처음 샴페인을, 프랑스 사람이 처음 우리 막걸리와 소주를 마신 공식 기록이다. 몽티니 영사는 보고서에서 비금도를 ‘날아오르는 새의 섬(l’île de l’Oiseau Volant)’이라고 썼다.
올해 5월 2일 프랑스 파리 근교 세브르국립도자기박물관에서 선보인, 몽티니 영사가 비금도에서 선물받은 갈색 옹기병.
비금도 사건을 연구했던 피에르 에마뉘엘 루 교수(파리7대학)는 “초기에 비밀리에 활동한 프랑스 선교사들이나 개인적으로 표류했던 선원도 있지만, 몽티니 영사는 프랑스 정부의 외교관으로서 처음으로 조선의 관료와 첫 공식 만남을 가진 사람”이라며 “비금도는 한-프랑스 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장소”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과 프랑스의 첫 만남을 선교사 박해나 병인양요(1866년)로만 기억하는데, 비금도 사건은 난파된 선원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양국 관료들이 힘을 합한 인도주의적 만남이었고, 술과 음식을 나눈 문화 교류의 장이었다”며 “비금도가 한국과 프랑스 양국의 화합의 장소로 잘 기려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거장들이 몰려오는 예술섬
신안군의 비금도, 도초도, 노대도, 안좌도 등엔 제임스 터렐, 올라푸르 엘리아손, 앤터니 곰리 등 세계적인 작가의 설치미술 작품이 들어서는 ‘예술섬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박우량 신안군수는 “예술섬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비금도를 한-프랑스 간의 역사적인 첫 만남을 기리는 기념관, 샴페인과 막걸리를 즐길 수 있는 해변 공원 등 한국과 프랑스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섬으로 가꿔 나가겠다”고 말했다. 비금도 명사십리 주변 바닷가에는 영국을 대표하는 설치 미술가 곰리의 작품이 들어선다. 곰리는 영국 북동부의 작은 탄광 도시였던 게이츠헤드에 220t의 철근을 사용해 ‘북방의 천사’(높이 20m)라는 거대 철제 조각상을 세웠다. 덕분에 한때 탄광촌이었던 이 작은 도시는 세계적인 예술 도시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명사십리 해변에 세워지는 곰리의 작품은 신안의 명물인 소금 결정체처럼 정육면체 모양의 철근이 모여 사람을 형상화한 것이다. 포스코가 40억 원어치의 철근을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곰리의 작품은 밀물 때는 바닷속으로 들어갔다가 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보기 드문 작품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미국의 설치미술가 터렐은 노대도에 화성과 목성의 소리를 채집해서 색상으로 보여주는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수국축제’로 유명한 도초도에는 덴마크 출신의 세계적 설치미술가 엘리아손의 작품이 들어선다. 내년 말까지 연꽃을 닮은 지형의 중심에 수국을 형상화한 엘리아손의 미술관이 들어서고, 주변은 계절마다 다양한 빛깔의 경관농업으로 ‘대지의 미술관’을 형성하게 된다. 안좌도엔 일본의 야나기 유키노리가 설계한 물에 떠 있는 ‘플로팅 뮤지엄’이 들어선다.
글·사진 신안=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