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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프랑스가 처음 만나 건배한 ‘샴페인의 섬’[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입력 | 2023-06-24 03:00:00

전남 신안군 비금도
1851년 비금도에 佛 어선 난파… 선원 구하러 몽티니 영사 방한
샴페인과 막걸리 나누며 첫 만남… 파리 박물관에 당시 술병 전시
세계적 예술가 찾는 신안 예술섬… 예술-문화교류의 섬으로 변신 중



전남 신안군 비금도 그림산에서 바라본 다도해와 염전 풍경.


‘날아오르는 새의 섬.’ 전남 신안군 비금도(飛禽島)는 하늘에서 보면 날개를 펼친 큰 새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신안의 설악산으로 불리는 그림산의 절경과 끝없는 명사십리 해변으로 유명한 비금도가 ‘한국과 프랑스가 처음 만난 섬’ ‘샴페인의 섬’으로 주목받고 있다. 비금도에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샴페인과 막걸리의 첫 만남

해변이 하트 모양으로 보이는 비금도 하누넘 해수욕장. 

전남 목포 KTX역에서 차를 타고 천사대교를 건너니 암태도 남강선착장이 나온다. 이곳에서 차를 싣고 페리호를 타면 50분 만에 비금도에 도착한다. 해변이 4.2km에 이르는 비금도 명사십리 해수욕장은 모래사장을 차를 타고 달릴 수 있을 만큼 눈과 가슴이 시원하게 뚫리는 해변이다. 또한 고갯마루에서 바라보면 하트 모양으로 보이는 ‘하누넘 해변’은 연인들이 사랑을 속삭이며 인증샷을 남기는 명소다. 비금도를 가로지르는 그림산과 선왕산은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룬다. 정상에서 바라보면 다도해의 섬들이 몽환적으로 떠 있고, 염전 위로 붉은 노을이 진다. 천혜의 자연이 살아 있어 어느 곳을 바라봐도 힐링이 되는 섬이다. 그런가 하면 알파고와 대결했던 세계적인 바둑 명인 이세돌의 고향이기도 하다.

전남 신안군 비금도 명사십리 해수욕장에서 한국과 프랑스의 역사적 첫 만남을 기억하며 샴페인 한잔. 

그런데 비금도 해변이 더욱 낭만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172년 전 이 섬에서 한국과 프랑스의 관리들이 샴페인과 막걸리를 주고받으며 첫 만남을 가졌던 스토리 때문이다.

1851년 4월 2일. 프랑스의 고래잡이선 나르발호가 비금도 모래 해변 바위섬에 부딪쳐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프랑스 북부 르아브르에서 출항한 나르발호는 고래를 찾아 대서양, 인도양, 남태평양을 넘어 한국까지 와 신안 앞바다에서 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당시 한국의 바다에는 서양의 포경선이 수시로 출몰했는데, 1849년에는 프랑스 포경선 리앙쿠르호가 동해에서 독도를 발견해 ‘리앙쿠르섬’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해안에 좌초된 나르발호 선원들은 200년 전 하멜이나 처형된 프랑스 신부처럼 감옥에 갇히거나 목숨을 잃을 것이란 공포에 떨었다. 당시 조선의 상황은 신유박해(1801년), 기해박해(1839년)로 국내에 비밀리에 입국해 활동하던 프랑스 선교사들이 대거 처형당해 이방인에 대한 경계심이 높았던 상황. 그래서 9명의 선원이 소형 배를 타고 탈출해 4월 19일 중국 상하이 프랑스 영사관을 찾아가 구조를 요청했다.

샤를 드 몽티니 영사(1805∼1868)는 다음 날인 4월 20일 곧바로 통역관과 영국 상인, 중국인 선원 등 30명을 태운 배를 이끌고 비금도에 있는 선원들을 찾아나섰다. 몽티니 영사는 제주도 대정 해변에 도착해 “난파된 프랑스 배와 선원들을 봤느냐”고 물었지만 모두 모른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결국 북상해 신안 앞바다 섬들을 하나하나 뒤지며 찾아다닌 끝에 비금도를 발견했다고 한다.

비금도에 도착한 몽티니 영사는 걱정과는 달리 선원들이 주민들로부터 쌀 등 음식을 제공받고, 숙소에서 당국의 보호 아래 잘 지내는 것을 보고 안심했다고 한다. 비변사등록과 일성록에 따르면 조선의 조정에서는 비금도에 난파한 프랑스 선원들이 중국으로 갈 수 있도록 배 2척을 마련해 주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몽티니 영사는 5월 2일 비금도를 관할하는 나주목사를 만난 자리에서 한국 정부에 고마움을 표시하고, 프랑스 선원들을 직접 배에 태워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떠나기 하루 전날인 2일. 몽티니 영사와 나주목사는 송별회를 가졌다. 몽티니 영사는 배에서 샴페인과 와인 수십 병을 꺼내 왔고, 조선인들은 도자기와 항아리에 담긴 전통술을 가져왔다.

“선실에서 조선의 관료들에게 내일 출발에 필요한 식량을 요청하고 나서, 다시 갑판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우리 배의 50여 명의 선원이 다양한 음식이 차려진 작은 테이블(‘소반’을 칭하는 듯)을 각자 앞에 두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 사이로 수많은 한국인들이 항아리 단지와 잔을 들고 다니면서 술을 따라 주었습니다. 우리도 그들에게 술을 대접하고 함께 마셨습니다. 정말 그림처럼 아름다운 식사(pittoresque repas)였습니다.”

“우리는 몇 시간 동안 다양한 종류의 샴페인과 와인, 독주를 함께 마셨습니다. 나는 한국인들처럼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샴페인과 와인, 특히 도수가 높은 술을 열정적으로 마셨습니다. 조선의 관료들은 자신들이 마시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하인들에게도 마시고 샴페인 병을 가져가도록 했습니다.”

당시 몽티니 영사는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에게 보낸 보고서에 비금도에서의 송별연 장면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조선인들이 따라 주었다는 항아리 단지에 담긴 술은 막걸리로 보이며, 독주도 마셨다는 말로 보아 소주도 제공됐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한국 사람이 처음 샴페인을, 프랑스 사람이 처음 우리 막걸리와 소주를 마신 공식 기록이다. 몽티니 영사는 보고서에서 비금도를 ‘날아오르는 새의 섬(l’île de l’Oiseau Volant)’이라고 썼다.

올해 5월 2일 프랑스 파리 근교 세브르국립도자기박물관에서 선보인, 몽티니 영사가 비금도에서 선물받은 갈색 옹기병. 

지난달 2일 프랑스 파리 교외에 있는 세브르 국립도자기박물관에서는 ‘샴페인과 막걸리의 첫 만남’이라는 흥미로운 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의 주인공은 옹기로 만든 갈색 주병(酒甁)이었다. 1851년 비금도에서 몽티니 영사가 선물로 받아 본국에 가져갔던 바로 그 술병이었다.

비금도 사건을 연구했던 피에르 에마뉘엘 루 교수(파리7대학)는 “초기에 비밀리에 활동한 프랑스 선교사들이나 개인적으로 표류했던 선원도 있지만, 몽티니 영사는 프랑스 정부의 외교관으로서 처음으로 조선의 관료와 첫 공식 만남을 가진 사람”이라며 “비금도는 한-프랑스 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장소”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과 프랑스의 첫 만남을 선교사 박해나 병인양요(1866년)로만 기억하는데, 비금도 사건은 난파된 선원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양국 관료들이 힘을 합한 인도주의적 만남이었고, 술과 음식을 나눈 문화 교류의 장이었다”며 “비금도가 한국과 프랑스 양국의 화합의 장소로 잘 기려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거장들이 몰려오는 예술섬
신안군의 비금도, 도초도, 노대도, 안좌도 등엔 제임스 터렐, 올라푸르 엘리아손, 앤터니 곰리 등 세계적인 작가의 설치미술 작품이 들어서는 ‘예술섬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박우량 신안군수는 “예술섬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비금도를 한-프랑스 간의 역사적인 첫 만남을 기리는 기념관, 샴페인과 막걸리를 즐길 수 있는 해변 공원 등 한국과 프랑스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섬으로 가꿔 나가겠다”고 말했다.

비금도 명사십리 주변 바닷가에는 영국을 대표하는 설치 미술가 곰리의 작품이 들어선다. 곰리는 영국 북동부의 작은 탄광 도시였던 게이츠헤드에 220t의 철근을 사용해 ‘북방의 천사’(높이 20m)라는 거대 철제 조각상을 세웠다. 덕분에 한때 탄광촌이었던 이 작은 도시는 세계적인 예술 도시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명사십리 해변에 세워지는 곰리의 작품은 신안의 명물인 소금 결정체처럼 정육면체 모양의 철근이 모여 사람을 형상화한 것이다. 포스코가 40억 원어치의 철근을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곰리의 작품은 밀물 때는 바닷속으로 들어갔다가 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보기 드문 작품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미국의 설치미술가 터렐은 노대도에 화성과 목성의 소리를 채집해서 색상으로 보여주는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수국축제’로 유명한 도초도에는 덴마크 출신의 세계적 설치미술가 엘리아손의 작품이 들어선다. 내년 말까지 연꽃을 닮은 지형의 중심에 수국을 형상화한 엘리아손의 미술관이 들어서고, 주변은 계절마다 다양한 빛깔의 경관농업으로 ‘대지의 미술관’을 형성하게 된다. 안좌도엔 일본의 야나기 유키노리가 설계한 물에 떠 있는 ‘플로팅 뮤지엄’이 들어선다.



글·사진 신안=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