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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연수에 빗댄 인생 이야기 ‘연수’ 펴낸 장류진 작가

입력 | 2023-06-25 12:55:00


장류진 작가는 “소설을 쓰면서 인물들의 대사를 입으로 내뱉거나 몸짓과 표정을 직접 연기했다”며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서럽게 울면서 소설을 쓰기도 했다”고 했다. ⓒ신나라


“안 돼!”

자동차 연수 선생님이 주연에게 소리쳤다. 운전 중인 주연은 분명 왼쪽 깜빡이를 켠 뒤, 사이드미러를 봤다. 뒤차가 보이는 것을 확인하고 핸들을 꺾어 좌측 차선을 밟았다. 그런데 사각지대에서 나타난 차가 경적을 울리며 등장한 것이다. 사고가 날뻔하자 선생님은 주연에게 잔소리를 퍼부었다. “여기는 자동차전용도로잖아요. 차가 쌩, 쌩, 달리는 데란 말이야.”

30대 여성인 주연은 원하는 대학에 한 번에 입학했다. 공인회계사(CPA) 시험을 통과해 대기업에서 일하는 ‘엄친딸’(엄마 친구 딸)이다. 하지만 어쩐지 운전대만 잡으면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손이 달달 떨린다. 과연 주연은 무사히 운전 연수를 받을 수 있을까. 또 원하는 삶의 목적지에 안전히 도착할 수 있을까. 단편소설 ‘연수’의 내용이다.

장류진 작가 ⓒ신나라


23일 6편의 단편소설이 담긴 단편소설집 ‘연수’(창비)를 펴낸 장류진 작가(37)도 초보 운전자일까 궁금했다. 장 작가는 22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나도 겁이 많아서 운전을 잘하지 못한다”며 깔깔 웃었다.

“스무 살에 운전면허 시험을 봤다가 여러 번 떨어졌어요. 운전면허 시험을 신청했다가 무서워서 시험을 안 본 적도 있습니다. 20대 중반에 운전면허를 땄지만 이후 운전 연수를 여러 번 받으며 고생한 기억이 있습니다. 하하.”

그는 2019년 젊은 직장인의 애환을 사실적이고 흡인력 있게 그린 첫 단편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창비)로 단숨에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2021년엔 가상화폐에 투자한 젊은 직장인들의 심리를 실감 나게 담은 장편소설 ‘달까지 가자’(창비)로 화제를 끌었다. ‘일의 기쁨과 슬픔’은 중국 일본 대만 터키 베트남, ‘달까지 가자’는 대만 태국 인도네시아 일본 중국에 각각 5개국에 번역 출간될 정도로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해외 독자들이 ‘한국의 젊은 직장인의 삶에 공감하고 있다’는 말을 많이 해요.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인기를 끄는 덕에 한국이 배경인 제 소설도 해외에서 주목받는 것 같습니다.”

단편소설집 ‘연수’ 표지. 창비 제공


신간에서도 그는 젊은 직장인의 삶을 사실적으로 살려냈다. 단편소설 ‘펀펀 페스티벌’에선 대기업 입사 합숙면접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사투를 그린다. ‘동계올림픽’에선 방송사 인턴사원이 정직원 전환이 가능할지 불안함을 느낀다. 정 작가가 20대에 직장생활을 했던 경험 때문일까 묻자 그는 조심히 답했다.

“청춘의 삶을 그려낸다는 말은 감사합니다. 다만 전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야기를 쓸 뿐이에요. 사과나무에 사과가 나듯이요.”

속도감 있는 전개로 ‘읽는 맛’을 살리는 그의 장점은 신간에서 여전히 빛난다. 삶의 애환을 달래는 건 월급뿐이라 토로했던 전작들과 달리 청춘을 위로하는 희망을 찾으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단편소설 ‘공모’에서 선배 직원은 회사를 그만둔다며 미안해하는 후배 직원에게 “네 미래가 될 수 없었던 내가 죄송하다”고 말한다. 단편소설 ‘연수’의 후반부에서 연수 선생님은 주인공에게 “잘하고 있다”며 용기를 전한다.

“청춘에게 고통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려 해요.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슬픔만큼 기쁨도 존재하니까요.”

장류진 작가 ⓒ신나라


계획을 묻자 그는 해맑게 답했다.

“소설을 쓰면서 고민한 시간이 제 슬픔이라면, 독자가 재밌게 읽어주는 게 제 기쁨입니다. 단편소설집과 경장편소설을 준비하고 있으니 기다려주세요.”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