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러파노 美헤리티지재단 부회장
22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만난 제임스 캐러파노 헤리티지재단 부회장은 “한국의 주요 8개국(G8) 가입을 지지한다”며 이를 위해 중국 등 특정국에 얽매이지 않는 경제성장, 국제사회에 대한 더 많은 기여, 일본과의 협력 강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한국이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코끼리’의 싸움에서 ‘잔디’처럼 밟히지 않으려면 특정국에 의존하지 않는 경제 성장을 이뤄내고 우크라이나 재건 참여 같은 국제사회에서의 기여를 늘려야 합니다.”
미국 보수 성향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에서 외교안보 분야를 총괄하고 있는 제임스 캐러파노 부회장(68)이 미중 갈등에 낀 한국의 나아갈 길에 관해 던진 충고다. 22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만난 그는 “두 패권국의 다툼에 중립지대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국가안보, 경제 등 모든 관점에서 한국이 중국이 아닌 미국의 편에 서는 것이 한국에도 이익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주요 7개국(G7)이 한국을 포함해 확대되는 것을 강하게 지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캐러파노 부회장은 미 육군사관학교(웨스트포인트) 출신으로 한국에서 두 차례 근무했다. 부친 또한 6·25전쟁 참전용사로 부자가 대를 이어 한국을 위해 싸웠다. 그는 “1978년 한국 춘천에 처음 부임했을 때 17세기에 온 줄 알았을 정도로 아무것도 없었다”며 그랬던 한국이 오늘날처럼 발전한 것은 ‘과거’가 아닌 ‘미래’를 중시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과의 과거사에 매몰되거나 조변석개하는 여론에 휘둘리지 말고 한미일 3국 협력이 가져올 밝은 미래를 보라고 했다. 자신 또한 본인과 가족이 한국에서 복무했기 때문이 아니라 “두 나라가 국제사회에서 같이 할 일이 많고 훌륭한 파트너임이 분명하기 때문에 한국을 중시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의 우려를 이해하나 북한의 일거수일투족을 지나치게 의식할 필요는 없다. 북한의 거듭된 핵 위협은 자신들이 전통적인 전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없다는 점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핵을 가졌다고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러시아가 이를 잘 보여준다. 전통적 전쟁에서 이길 수 없는데 핵만으로 판세를 뒤집을 순 없다.
한국이 ‘인도 vs 파키스탄’ 핵 경쟁 때의 인도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두 나라 모두 수십 년간 상대방의 핵만 의식하고 집착했지만 인도가 그 함정에서 먼저 탈출해 경제 성장에 매진했다. 파키스탄은 아직도 정정 불안이 극심하고 경제도 수렁에 빠져 있지만 인도는 세계적인 강대국이 됐다. 한국도 그럴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 점을 잘 이해하고 북한에 대처하고 있다고 본다.”
―미중 갈등 격화로 한국도 고민이 많다.
“현재의 미중 갈등은 ‘코끼리 싸움’ 성격이 강하다. 두 코끼리는 괜찮지만 중간에 낀 작고 가난한 나라는 ‘잔디’처럼 다 밟혀 죽을 수 있다. 그래서 잔디가 아닌 나무가 돼야 한다. 한국은 이미 나무지만 더 큰 나무가 되어야 한다.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규제로 특히 한국 반도체 업계의 우려가 깊다.
“중국 시장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저렴한 비용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싼 듯 보이는 그 비용이 진짜 싼지는 따져봐야 한다. 미 제약업계도 중국산 원재료가 싸고 구하기 쉽다는 이유로 중국 진출을 확대했다가 후회하고 있다. 미중 갈등 고조로 적지 않은 기업이 ‘탈(脫)중국’을 시도하고 있는데 애초에 중국에 가지 않았다면 치르지 않아도 될 비용이 아닌가. 중국은 주변국에 늘 적대적이며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킨 적이 없다. 주변국이 중립지대에 있는 것 또한 허용하지 않는다.”
―최근 한국의 주요 8개국(G8) 가입을 지지한다는 글을 재단 웹사이트에 올렸다.
“한국과 미국은 강대국의 악의적인 괴롭힘이 없는 자유롭고 개방된 공간에서 많은 혜택을 누렸다. 또한 한국의 G8 가입은 한미일 3개국 모두에도 이익이다. G8에 가입하려면 앞서 언급한 경제 성장, 국제사회 기여 외에도 일본의 지지 또한 필요하다. 과거는 물론 중요하지만 양국의 과거사가 두 나라의 미래를 제약하도록 두면 안 된다.
―본인과 가족 모두 한국과 인연이 깊다고 들었다.
“나는 1970년대와 2000년대 미 육군 소속으로 두 차례 복무했고 아버지는 6·25전쟁에서 직접 싸우셨다. 내가 웨스트포인트를 택한 것 또한 전쟁 당시 아버지가 깊이 존경하고 따랐던 장교가 이곳을 졸업했기 때문이었으니 역시 한국과 관련이 있다. 당시 어머니는 한국에 오진 않으셨지만 미 여군단(Women’s Army Corps·WAC) 소속으로 한국을 후방 지원하셨다.
1978년 처음 (강원) 춘천 인근 부대에 왔을 때 17세기에 온 줄 알았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나무는커녕 풀뿌리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랬던 한국이 오늘의 발전을 이룬 것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나와 가족이 한국에서 복무했기 때문에 한국을 중시하는 게 아니라 한국과 미국의 협력이 두 나라 모두에 이익이기 때문에 중시한다. 두 나라는 국제사회에서 같이 할 일이 많고 훌륭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
―대만을 둘러싼 미중 갈등 또한 심각하다. 대만이 제2의 우크라이나가 될 수 있고, 빠르면 미국과 대만의 대선이 있는 내년 중국이 침공을 단행할 것이란 전망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다소 과한 해석이다. 미국, 중국, 대만 모두 ‘현상 유지’를 가장 원한다. 육로 침공이 가능한 우크라이나와 달리 대만을 점령하려면 바다를 건너야 하는데 쉽지 않다. 대만 침공은 공멸을 뜻한다는 것을 중국 또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중국이 진짜 원하는 것은 홍콩과 마찬가지로 대만에 친중 정권이 들어서는 것이다.”
―내년 미 대선 결과가 국제사회에 많은 변화를 불러올까.
“공화당과 민주당 중 어떤 당이 승리해도 미 외교안보 정책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 조 바이든 등 4명의 전·현직 대통령 모두 재임 시절 중국, 러시아, 이란 등 3개국을 가장 중시했다. 다음 대통령 또한 그럴 것이다. 최근 이 세 나라가 밀착하는 이유도 그것이 미국에 대적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알기 때문이다.
한국 일각에서 ‘미 대통령이 바뀌면 주한미군 철수설 등이 다시 제기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도 못 했던 일이다. 대통령이 혼자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외교안보 정책의 영속성이 그리 쉽게 사라지지도 않는다.
양당이 가장 차이를 보이는 의제는 ‘에너지’다. 공화당은 화석 연료, 민주당은 청정에너지에 집중하고 있다. 대선 결과에 따라 에너지 정책은 적지 않게 요동칠 것이다.”
제임스 캐러파노1955년 미국 뉴욕시에서 태어났다. 미 육군사관학교(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한 후 육군에 25년간 몸담았고 한국에서만 두 차례 복무했다. 부친은 6·25전쟁에서 직접 싸웠고 모친은 미 여군단 소속으로 후방 지원을 하는 등 한국과 인연이 깊다. 2013년 미군 참전용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베테랑 네이션’을 공동 제작했다. 조지타운대에서 근대 유럽 역사, 외교사 전공으로 각각 석박사 학위를 땄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