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화하는 전고체 배터리 경쟁 소재 전체가 고체로 안전성 높아… 같은 공간에 더 많은 배터리셀 로이터 “배터리 분야 성배” 평가… 도요타 “2027년 전기차에 탑재” 업계, 양산 시기 더 늦을 것 예상… 日기업이 특허 1∼3위 휩쓸어
이건혁 산업1부 기자
《“전고체 배터리는 배터리 개발 분야의 ‘성배’이며, 내연기관에는 ‘죽음의 키스’다.”
13일 로이터통신이 전고체(全固體) 배터리에 대해 내놓은 평가다. 전고체 배터리는 현재 전기차에 주로 탑재되는 이차전지의 여러 단점들을 극복한 제품이다. 따라서 이 배터리가 본격적으로 상용화되면 자동차 시장에서 내연기관은 완전히 퇴장하고 진정한 전기차 시대가 열린다는 의미다.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를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기술적 문제가 다수 남아 있다. 생산 단가와 생산 수율 등도 차후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잠재력이 워낙 커 완성차 업체, 배터리 제조사를 포함한 여러 글로벌 회사들이 전고체 배터리 시장 선점을 위한 물밑 경쟁을 이미 시작했다. 전고체 배터리 관련 특허를 가장 많이 확보한 일본 도요타가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지만, 이차전지 분야를 주도하고 있는 한국도 언제든 치고 나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안전성, 주행거리 동시 개선 ‘열쇠’
차세대 배터리로 각광받는 전고체 배터리는 글자 그대로 배터리의 모든 소재가 고체다. 다시 말해 전해질 역시 고체라는 얘기다. 때문에 전고체 배터리는 분리막이 필요 없다. 액체 전해질을 사용하면 양극과 음극이 접촉해 폭발할 가능성이 있어 반드시 분리막이 필요한 것과 다르다.
전고체 배터리의 강점은 안전성이다. 리튬 이온 배터리는 온도 변화로 인해 부피가 팽창하거나 외부 충격으로 인한 누액 등으로 손상될 경우 화재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특히 액체 전해질의 온도가 일정 수준 이상 높아지면 ‘열폭주’가 일어날 수도 있다. 때문에 이를 관리하기 위한 열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 반면 고체로만 구성된 전고체 배터리는 이 같은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다. 안전성이 높아진 만큼 외부 충격을 막기 위한 장치나 열관리 시스템을 대폭 줄일 수 있다. 같은 공간에 더 많은 배터리셀을 탑재할 수 있는 것이다. 배터리셀을 많이 넣으면 전기차 주행 거리가 늘어난다. 완성차업체 입장에서는 전기차 구조를 단순화할 수 있어 원가를 절감하고, 배터리 무게를 줄여 경량화를 추구하기가 더 쉽다.
●도요타 “2027년 탑재”, 업계 “글쎄”
전고체 배터리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제품인 것은 아니다. 인공 심장박동기와 같은 의료 기기 등에 사용된 사례가 있다. 문제는 이를 전기차에 쓸 수 있는 수준으로 개발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전고체 배터리의 전해질은 크게 고분자(폴리머), 산화물계, 황화물계로 구분돼 연구가 진행 중이다. 업계에서는 황화물계에 주목하고 있다. 물질이 이온을 운반할 수 있는 전도도가 높고, 양극과 음극과의 접촉면을 넓게 만들 수 있어서다. 하지만 공정상 유독가스인 황화수소가 발생하고, 생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전고체 배터리의 음극에서 발생하는 덴드라이트(Dendrite·음극 표면에 리튬 결정이 생성돼 효율이 떨어지고 결국 양극과 만나게 되는 것) 현상도 극복해야 한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지난해 일본 특허권 조사업체 ‘패턴트 리절트’에 의뢰해 2000년부터 2022년 3월까지 미국 등 세계 10개국과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 등에 출원된 전고체 배터리 관련 특허를 조사했다. 그 결과 1위인 도요타(1331건)를 비롯해 파나소닉(445건), 이데미쓰(272건) 등 일본 업체가 1∼3위를 휩쓴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도요타가 설령 전고체 배터리 관련 신기술을 확보했더라도 2027년 의미 있는 수준의 양산에 도달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도요타가 이야기하는 ‘좋은 재료’가 불확실하고, 무엇보다 앞으로 3∼4년 만에 사업성을 검증하고 양산까지 시작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이차전지 대량생산 경험이 부족한 도요타가 배터리 제조를 과소평가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한국 자동차·배터리 업계도 도전
정부도 2030년까지 민간 부문과 함께 20조 원을 차세대 배터리 분야에 투자해 전고체 배터리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김동완 고려대 건축사회환경공학부 교수는 “전고체 배터리 관련 기술이 향상돼 의미 있는 수준으로 상용화되려면 2027년은 물론 2030년도 이르다는 평가가 있다”면서도 “한국이 가진 이차전지 연구개발(R&D)과 생산 노하우는 세계 최고 수준인 만큼 전고체 배터리 시장에서도 결코 뒤처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건혁 산업1부 기자 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