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 이미원 천안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장
한국에서는 매일 36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그리고 매일 92명이 자살을 시도해 응급실에 실려 갑니다. 한국은 죽고 싶은 사람이 정말 많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 곳곳에는 죽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온 마음을 다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죽고 싶은 당신에게’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연재물입니다. 지친 당신이 어디서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도 함께 담겠습니다. 죽고 싶은 당신도 외롭지 않을 수 있습니다. “5년 전까지만 해도 자해를 한 아이들은 정신건강이 매우 위험한 상태라고 보고 ‘고위기 청소년’이라고 말했어요. 그런데 요새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해를 하는 아이들이 너무 많거든요.”
이 센터장은 분명히 느끼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해를 하는 아이들이, “선생님. 저 죽고 싶어요”라고 호소하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그러면서 학교와 집에서는 자신이 겪는 어려움을 털어놓지 못한 채 점차 고립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은 왜 이렇게 안타까운 상황에 몰리게 됐을까. 25일 이 센터장에게 ‘죽고 싶은 아이들’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 사회가 그 아이들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지 물었다.
이미원 천안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장이 상담을 맡고 있는 한 청소년과 마주보며 밝게 웃고 있다. 이 센터장 제공.
● ‘스트레스 해소 수단’으로 자해하는 아이들
이 센터장은 2018년을 전후로 온라인 상에서 일명 ‘자해 인증샷’이 마치 유행처럼 퍼지면서 자해를 하는 청소년들의 양상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전까지는 자해를 자살의 전조 증상이라고 봤는데, 이때부터는 ‘자살을 할 생각은 없는데 자해는 하는’ 아이들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주변에서 자해를 자주 접하게 되면서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 등 마음이 힘들 때 자해라는 선택지가 떠오르게 된 것이다.이 센터장이 상담한 고3 A 양도 그랬다. 학교생활에 반복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A 양의 정신건강은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취약해져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평소처럼 공부를 하던 A 양은 갑자기 몸이 물 속에 푹 빠지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점점 더 깊은 물 속으로 빠지는 것 같으면서 정신이 아득해지고 곧 쓰러질 것만 같은 느낌, 일종의 공황 증상이었다. 그 순간, A 양은 자해를 떠올렸다.
이 센터장은 “아이들도 자해가 위험한 행동이라는 걸 안다”며 “하지만 스트레스나 부정적인 감정이 쌓이는 걸 성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게 알아채기 때문에 적절히 대처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자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요즘 아이들은 굉장히 자기주도적이고 당당하지만 자신이 위기에 처했을 때 ‘힘들다’ ‘도와달라’는 말을 잘 하지 않아서 상담사로서 많이 고민스럽다”며 “건강한 어른들이 곁에 있어줘야 아이들이 그런 말을 잘 할 수 있을텐데 안타깝게도 아직 우리 어른들이 그렇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 ‘친구의 자살’이 남기고 간 것
이 센터장은 최근 증가하는 청소년 자살이 또래 청소년에게 남기는 후유증에도 주목하고 있다.“친구가 자살로 세상을 떠나면 아이들끼리 ‘그 애가 대체 왜 죽었을까’에 대한 유추를 많이 합니다. 그리고 나면 아이들 마음 속에 ‘나도 너무 많이 힘들면 그 친구처럼 죽어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곤 해요. 그 과정에서 불안, 우울 등의 증상이 상당히 많이 나타납니다”
상처를 키우는 건 때때로 어른들의 태도이기도 하다. 학교나 가정에서 ‘더이상 그 아이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하거나 ‘교통사고를 당해서 그렇게 됐다’고 거짓말을 하며 쉬쉬하는 건 아이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센터장은 아이들이 ‘애도의 기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도록 주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친구의 죽음을 경험하고 최소 1, 2주 동안은 아이가 충분히 슬퍼하고 때로는 펑펑 울 수 있도록 배려해줘야 합니다. 가만히 옆에 있어주세요.”
자꾸 뭔가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너무 슬프지? 너라도 대신 열심히 살자’라고 조언을 하기보다는 조용히 지켜봐 주고 기다려줘야 한다. 한 달이 지나도 계속 힘들어하면 그때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미원 천안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장이 상담을 맡고 있는 청소년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이 센터장 제공.
● “그래도 아이들은 변합니다”
아이들의 정신건강이 크게 악화되고 있지만, 그래도 이 센터장은 아이들에게 변화하고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센터장이 3년 전 만난 18살 B 양도 그랬다.앞머리를 길게 내려 얼굴을 다 가린 채로 고개를 푹 숙이고 다니던 아이. 아이의 마음 속에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그런 아버지를 참고 견디는 어머니에 대한 애증이 뒤섞여 있었다. ‘나는 혼자이고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가득찬 아이는 학교 교실에서 자해를 하고 자살 시도도 여러차례 했었다.
독특한 건 그러면서도 또래 친구를 각별히 돌보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었다. B 양은 자신처럼 자해를 하는 친구를 발견하면 아무리 늦은 밤이어도 찾아가 뜯어 말리고 병원에 데리고 가곤 했다.
상담을 하면서 이 센터장은 B 양에게 말했다. “○○이가 남을 잘 돌보는만큼 ○○이도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야.”
그리고 B 양에게 물고기를 한 마리 키워보자고 제안했다. 그 물고기를 돌보기 위해서라도 살아야 한다는 의지가 B 양의 마음 속에 피어났다. 자해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는 인형을 꼬매거나 날카롭지 않은 도구로 뜨개질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평소에는 말랑말랑하고 큰 인형을 꼭 안고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어머니를 설득해 30분씩 아이와 둘이 산책을 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시간도 마련했다. 1년 반 가까이 상담을 받는 동안 위기도 여러번 있었지만 아이는 결국 건강을 회복했고 대학에도 진학했다.
이 센터장은 마음이 아픈 아이들을 돌보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이해한다. 그는 “아이 뿐만 아니라 그런 아이를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도 당연히 너무 힘들 수밖에 없다”며 “그건 부모님이 못나서도, 무언가 잘못해서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덧붙였다.
“그래도 분명한 건 좋은 어른이 곁에서 아이의 고통을 헤아려주고 손을 잡아줄 때 아이들이 삶의 방향성을 다시 찾을 수 있다는 겁니다. 가출한 아이들 중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몰래 집에 가서 밥을 먹고 다시 나오는 아이들이 있어요. 누가 차려놓은 밥상이 있는 것도 아닌데요. 왜 그랬냐고 물으면 ‘그냥요’라고 말해요. 그게 아이들입니다. ‘다 싫다’면서도 누군가의 사랑을 느끼고 싶어하는 게 아이들이예요. 아이들은 변할 수 있고, 저는 그래서 아이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살 예방 Q&A
내 가족, 친구, 이웃이 ‘죽고 싶어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의 자문을 받아 자살 예방과 관련된 궁금증을 하나씩 풀어드립니다.
Q. 막 자살을 시도하려는 사람을 마주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당황스러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아요.
A. 응급처치가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최대한 편안한 장소에서 따뜻한 음료를 마시면서 안정감부터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그리고 자살 시도자가 취하려는 자살방법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이야기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단순한 조언 또는 막연하게 ‘잘 될 거야’라고 말하는 것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니 주의해주세요.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 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 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애플리케이션(앱) ‘다 들어줄 개’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죽고 싶은 당신에게’ 시리즈의 다른 기사들은 아래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donga.com/news/Series/70030000000942
김소영 기자 ks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