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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시간 아까워 생라면만 드셨나”…故주석중 교수 유품 ‘라면스프’

입력 | 2023-06-27 16:44:00

20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고(故) 주석중 아산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의 발인이 엄수되고 있다. 2023.6.20. 뉴스1


지난 16일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고(故) 주석중 서울아산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의 장남이 추모객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26일 페이스북을 통해 장남 주현영 씨가 추모객에게 전한 감사 메시지를 전달했다.

주 씨는 “여러분께서 따뜻한 위로와 격려로 저희와 함께해 주신 덕분에 아버지 장례를 무사히 마쳤다”며 “아버지가 평소에 어떤 분인지 이야기해 주시고, 진심 어린 애도를 해주셔서 가족들에게 큰 힘이 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장례를 마치고 며칠 후 유품을 정리하려 연구실에 갔다”며 “책상 아래 한쪽에 놓인 상자에 수도 없이 버려진 라면 스프가 널려있었다” 고 전했다. 이어 “제대로 식사할 시간을 내기 어려워서, 아니면 그 시간조차 아까워서 연구실 건너 의국에서 생라면을 가져와 면만 부숴 드시고 스프를 그렇게 버려둔 것이 아닌가 여겨졌다”고 했다.

주 씨는 “아버지 빈소가 마련된 첫날 펑펑 울면서 찾아온 젊은 부부가 있었다”며 “갑작스런 대동맥 박리로 여러 병원을 전전했으나 어려운 수술로 모두가 기피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저희 아버지가 집도해 새로운 생명을 얻었노라며 너무나 안타까워하시고 슬퍼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아무리 위험한 수술이라도 ‘내가 저 환자를 수술하지 않으면 저 환자는 죽는다는 생각이 들면 내가 감당해야지 어떻하겠냐’고, ‘확률이나 데이터 같은 것이 무슨 대수냐’고 그러셨던 아버지 말씀이 떠올랐다”고 밝혔다.

이어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어머니께 뜬금없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더라”며 “’나는 지금껏 원 없이 살았다. 수많은 환자 수술해서 잘 됐고, 여러 가지 새로운 수술 방법도 좋았다. 하고 싶은 연구도, 쓰고 싶은 논문도 다 썼다. 하나님이 내려주신 소명을 다한 듯하여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했다더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여러분이 기억해 주신 아버지의 모습과 삶의 방식을 가슴에 새기고, 부족하지만 절반만이라도 아버지처럼 살도록 노력하겠다. 깊이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주 교수는 지난 16일 오후 1시 20분경 서울 송파구 풍납동의 한 아파트 단지 앞 교차로에서 자전거를 탄 채 횡단보도를 건너려다 우회전하던 덤프트럭에 치여 사망했다.

생전 대외적으로 본인의 이름을 알리는 것 보다 자신의 분야에서 헌신적으로 의술을 펼친 것으로 알려졌던 그는 응급 환자가 발생했을 때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병원 근처 10분 거리에 집을 구해 살았다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발생 전날까지도 가족과의 저녁 식사 약속을 뒤로한 채 응급 환자의 목숨을 구했던 그가 허망하게 숨을 거두면서 애도의 목소리가 줄을 이었다.



이예지 동아닷컴 기자 leey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