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이탈리아 최남단 람페두사섬 앞바다에서 밀입국선을 타고 온 이주민들이 뒤집힌 배 옆에서 헤엄을 치며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AP 뉴시스
난민을 실은 밀입국선이 섬에 도착하면 의사인 피에르토 바르톨로(67)는 갑판에 오른다. 살아서 온 사람을 검진하고, 시신으로 도착한 이들은 검시하는 게 그의 일이다. 일터는 이탈리아 최남단의 휴양지 람페두사섬이다. 그가 나고 자란 이곳은 북아프리카 앞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들의 대표적인 환승지다. 바르톨로가 검진하는 난민들의 몸에는 그들이 배에 오르기 전 어떤 지옥들을 경유했는지가 새겨져 있다.
칼로 베인 흉터나 담뱃불로 지진 자국은 어딘가에서 붙잡혀 고문을 받은 흔적이다. 배 부위에 거친 수술 자국이 목격되기도 한다. 수백만 원의 승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한쪽 신장을 팔아야 했던 사람들이다. 성폭행에 대비해 승선 전 독한 피임주사를 맞는 10대 여성들도 있다. 조기 폐경 등 치명적 부작용을 그 아이들은 알지 못한다.
바르톨로는 몇 년 전 봤던 젊은 시리아 부부의 넋 나간 눈동자를 기억한다. 부부는 배가 뒤집혀 800여 명이 모두 바다에 빠진 날 구조돼 온 사람들이었다. 남편은 바다로 뛰어들기 전 생후 9개월 된 아기를 가슴팍 옷 안에 집어넣었다. 물에선 배영 자세로 몸을 뒤집어 한 손에 아내를, 다른 한 손에 세 살배기 아들을 잡았다. 그 자세로 등헤엄을 치며 구조를 기다렸다. 하지만 남자는 녹초가 되어 갔다. 물살도 거세졌다. 탈진하면 네 가족 모두 물에 잠길 상황이었다. 남자가 아들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아들은 천천히 멀어져 갔다고 했다. 그러고 몇 분 뒤 구조 헬기 소리가 들려왔다. 남자는 바르톨로에게 “저는 평생 저를 용서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8월 고깃배를 타고 지중해 한복판을 건너는 이주민들.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 세 대륙에 둘러싸인 지중해에선 최근 10년 사이 수천명의 이주민들이 물에 빠져 숨지거나 실종됐다. 그로 인해 ‘죽음의 바다’, ‘물의 무덤’, ‘유럽 최대 공동묘지’ 등의 오명을 안게 됐다. AP 뉴시스
이탈리아와 함께 난민들의 최대 경유지인 그리스 해안에서도 그런 비극이 자주 벌어진다. 13일 그리스 연안을 지나던 밀입국선에는 약 750명이 타고 있었다. 길이 25m의 배에 빼곡히 탄 사람들은 큰 파도가 치면 언제든 밖으로 쏟아질듯 위태로워 보였다. 몇 시간 뒤 이 배가 침몰해 최소 600명이 숨지던 때 인근에는 그리스 해안경비대 구조선이 있었다. 경비대는 침몰 18시간 전에 이 배를 발견하고도 항해 상황을 지켜만 봤다. 경비대는 “도움이 필요한지 물었지만 선원들이 ‘우리는 이탈리아로 간다(No help, Go Italy)’며 거절했다”고 했다.
하지만 영국 BBC와 가디언이 전한 생존자 진술과 무전 내용,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항로 추적 결과는 다른 정황을 보여준다. 당시 배는 침몰 전 7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엔진도 고장 난 상태였다. 그러다 갑자기 배가 격렬하게 흔들렸고 순식간에 우측으로 기울어 침몰했다. 이 때문에 해안경비대가 침몰에 대비해 안전조치를 취하거나 구조에 적극 나서야 했는데 방관했다는 의혹이 강하게 일고 있다.
유럽이 원래 이랬던 것은 아니다. 2010년 아랍의 봄, 2016년 시리아 내전 등을 거치며 난민선이 급증하자 유럽은 침몰 위험이 높은 지중해 한복판에서 물러섰다. 그 전에는 ‘국경없는의사회’ 등 난민단체 구조선과도 정보를 공유하며 힘을 합쳤지만 지금은 민간 구조 자체를 불법화했다. 그 대신 난민선이 떠나온 리비아, 튀니지 당국에 배의 위치를 알려 강제송환 시키는 방식으로 난민 관리와 책임을 외주화하고 있다. 그 결과 난민들은 어떻게든 ‘지옥’으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죽음의 항해에 몸을 던진다.
사람에겐 안전한 곳에서 살 권리, 더 나은 삶을 찾을 권리가 있지만 난민 신청이 모두 수용되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바다에서 목숨이 위태로울 때 적절한 구조를 받는 것은 국제법이 규정한 기본권이다. 쫓겨날 때 쫓겨나더라도 생명은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바르톨로가 부두에서 만난 난민들은 하나같이 얼굴이 하얬다고 한다. 며칠간 거친 바닷바람을 맞으며 소금기가 들러붙은 탓이다. 이들은 마침내 섬에 닿고 나면 살았다는 안도감에, 또는 항해 중 잃어버린 가족들이 떠올라 눈물을 흘린다. 눈물은 얼굴을 타고 내려오며 하얗게 서린 소금을 녹인다. 바르톨로는 25년간의 ‘난민 주치의’ 경험을 책으로 썼는데 그 책 이름이 ‘소금 눈물’이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