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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박성민]‘이해찬 세대’ 떠올리게 하는 ‘이주호 세대’

입력 | 2023-06-28 00:03:00

[수능-사교육 논란]



박성민·정책사회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불과 5개월 앞두고 출제 기조를 바꾸면 학생들의 유불리가 바뀌는데, 그게 바로 ‘불공정’ 아닌가요?”

27일 기자와 인터뷰한 고3 학부모 최모 씨(48)는 윤석열 대통령의 ‘수능 발언’ 이후 잠을 못 이룬다고 했다. 그는 “딸이 한 문제라도 더 맞히기 위해 전력 질주해야 할 시점에 제자리에 멈춰 선 기분”이라고 했다.

15일 윤 대통령의 수능 발언 이후 2주가 지났지만 입시 현장은 ‘시계 제로’다. 대입을 담당하는 교육부 인재정책기획관(국장)이 경질되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사임하고, 사교육 업계엔 전례 없는 ‘카르텔(담합)’ 조사가 시작됐다. 그런데 그 배경은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

26일 교육부가 26개 수능 및 모의평가 기출문제를 ‘킬러 문항’이라며 공개하자 혼란은 더 커졌다. 처음에는 킬러 문항의 기준을 “교육과정 밖에서 출제된 문제”라고 했던 교육부가 이날은 “교육과정에서 다루기 어려운 영역”이라며 말을 바꿨다.

킬러 문항을 풀기 위해 사교육에 의존하는 관행을 끊겠다는 정부의 ‘공정 수능’ 기조에 반대할 사람은 드물다. 문제는 이런 혼선이 발생한 시점이다. 대통령 현안보고 내용을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브리핑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이번 논란은 오래 준비한 정책이나 정제된 메시지로 보이지 않는다. 야권에선 “연금개혁도 실패하고 노조 때리기도 식상해지자 이제는 사교육 때리기에 나섰다”는 말까지 나온다.

대한민국에서 교육 문제는 ‘역린’이다. 박근혜 정권이 무너진 데는 국정농단도 있었지만 정유라의 입시 비리가 사실상 학부모들의 분노를 터뜨린 기폭제 역할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정책의 방향성만큼이나 중요한 게 당사자의 피해를 최소화할 정교한 설계와 속도 조절이다. ‘만 5세 취학’을 무리하게 추진하려다가 장관이 물러난 지 불과 1년도 안 됐다.

기자는 2002년 대학에 입학한 이른바 ‘이해찬 세대’다. 1999년 이해찬 당시 교육부 장관은 ‘특기 하나만 있으면 대학에 갈 수 있도록 하겠다’며 야간자율학습과 월말고사 등을 없앴다. 결국 당사자들에게 돌아온 건 ‘단군 이래 최저 학력’이라는 낙인이었다. 난도 조절에 실패한 2002학년도 수능은 전년 대비 평균 점수가 66.8점이나 하락한 ‘지옥불 수능’으로 불렸고, 이듬해 재수생을 대거 만들어냈다. 올해 고3인 2005년생이 처한 상황은 20여 년 전 이해찬 세대를 떠올리게 한다. 이들이 ‘이주호 세대’로 기억되는 일이 없길 바랄 뿐이다.




박성민·정책사회부 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