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이탈리아 최남단 람페두사섬 앞바다에서 밀입국선을 타고 온 이주민들이 뒤집힌 배 주변에서 헤엄을 치며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AP 뉴시스
신광영 국제부 차장
바르톨로는 아이를 데리고 탄 여성들의 엉덩이와 다리에서 심각한 화상을 자주 본다. ‘고무보트 병’이라고 불리는 화학적 화상이다. 인신 밀수업자들은 배가 이탈리아 해안에 가까워지면 단속을 피해 허름한 고무보트에 난민들을 옮겨 태운다. 남자들은 도넛 모양의 테두리에 걸터앉지만 여성들은 아이를 품에 안고 바닥에 앉는다. 숱한 파도를 지나며 기름통에서 새어나온 휘발유가 짠물과 섞여 살인적인 혼합물이 된다. 그게 여성들의 옷을 적시고 살갗을 파고든다.
이탈리아와 함께 난민들의 최대 경유지인 그리스 해안에서도 그런 비극이 자주 벌어진다. 13일 그리스 연안을 지나던 밀입국선에는 약 750명이 타고 있었다. 길이 25m의 갑판에 빼곡히 탄 사람들은 큰 파도가 치면 언제든 쏟아질듯 위태로워 보였다. 몇 시간 뒤 이 배가 침몰해 최소 600명이 숨지던 때 인근에는 그리스 해안경비대 구조선이 있었다. 경비대는 침몰 18시간 전에 이 배를 발견하고도 항해 상황을 지켜만 봤다. 경비대는 “도움이 필요한지 물었지만 선원들이 ‘우리는 이탈리아로 간다’며 거절했다”고 했다.
하지만 영국 BBC와 가디언이 전한 생존자 진술과 무전 내용,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항로 추적 결과는 다른 정황을 보여준다. 당시 배는 침몰 전 7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엔진도 고장난 상태였다. 그러다 갑자기 배가 격렬하게 흔들렸고 순식간에 우측으로 기울어 침몰했다. 이 때문에 해안경비대가 침몰에 대비해 안전조치를 취하거나 구조에 적극 나서야 했는데 방관했다는 의혹이 강하게 일고 있다.
이번 사건은 난민 밀입국선을 대하는 유럽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난민을 수용할 의사도 여력도 없다 보니 전략적으로 구조를 지연시키며 배가 자국 영해 밖으로 나가기만을 기다리는 ‘밀어내기’를 하는 것이다. 유럽이 원래 이랬던 것은 아니다. 2010년 아랍의 봄, 2016년 시리아 내전 등을 거치며 난민선이 급증하자 유럽은 침몰 위험이 높은 지중해 한복판에서 물러섰다. 그 전에는 ‘국경없는의사회’ 등 난민단체 구조선과도 정보를 공유하며 힘을 합쳤지만 지금은 민간 구조 자체를 불법화했다. 그 대신 난민선이 떠나온 리비아, 튀니지 당국에 배의 위치를 알려 강제송환 시키는 방식으로 난민 관리와 책임을 외주화하고 있다. 그 결과 난민들은 어떻게든 ‘지옥’으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죽음의 항해에 몸을 던진다.
사람에겐 안전한 곳에서 살 권리, 더 나은 삶을 찾을 권리가 있지만 난민 신청이 모두 수용되긴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바다에서 목숨이 위태로울 때 적절한 구조를 받는 것은 국제법이 규정한 기본권이다. 쫓겨날 때 쫓겨나더라도 생명은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광영 국제부 차장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