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응급환자들의 ‘표류’] 중증환자 107만명 5년새 25% 증가 정신과 병상은 5만여 개… 18% 감소 정신과 수가 낮아 유지할수록 손해… 입원 조건 강화되며 가족 고통 가중
18년째 조현병을 앓고 있는 서른네 살 딸을 돌보고 있는 김경연 씨(60·전남 완도군)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날을 말했다. 3월 2일 오후 4시, 딸은 ‘이웃집이 자신을 감시한다’며 천장을 막대기로 두들기더니 이웃을 해칠 것처럼 굴기 시작했다. 갑자기 망상 증상이 심해진 것이다. 급성 복통이 오면 응급실에 가듯, 조현병도 급성 증상이 나타나면 응급실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45km 떨어진 37분 거리의 전남 해남군에 종합병원이 2곳 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정신병원이다. 하지만 2곳 모두 정신건강의학과 입원 병상이 꽉 찼다며 딸을 받아주지 않았다. 107km 거리의 전남 나주시 국립정신병원은 정신건강 전문의가 퇴근해 진료 및 입원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결국 130km가 넘게 떨어진 2시간 거리의 광주 종합병원으로 운전대를 돌리면서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역시 딸을 받아줄 병상이 없다고 했다.
● 증상 심해질 때마다 병원 찾아 표류
정신질환자 표류의 원인은 일차적으로 절대적인 병상 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올해 정신질환 치료에 필수적인 정신과 폐쇄병상 수는 5만5364개로 2017년(6만7298개)보다 18% 감소했다. 그나마 김 씨의 딸처럼 천식 등 신체질환과 동반한 정신질환을 치료받을 수 있는 상급종합병원 병상은 3806개뿐이다. 반면 중증 정신질환자 수는 지난해 107만2846명으로 5년 만에 25%나 증가했다. 동아일보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분석해 △조현병 △ 지속적 망상장애 △조증 에피소드 △양극성 정동장애 △우울 에피소드 △재발성 우울장애 환자 등 자살 시도 및 발작 등 신체질환을 동반할 우려가 있는 중증 정신질환자 수를 추산한 결과다.
정신질환자 입원 병상이 부족한 건 서울도 다르지 않다. 이문희 씨(62·서울 은평구)는 조현병과 정동장애를 앓고 있는 아들(36)을 17년째 돌보고 있다. 두 달 전 아들이 ‘가슴이 터질 듯 답답하다’며 열이 급격히 오르는 등 증상이 심해져 서울 대형병원들에 입원을 문의했지만 ‘빈 병상이 없다’는 대답만 들었다. 이 씨는 “일반 병원에서는 진료를 받아도 기존에 먹던 약을 조합해 처방해주는 수준”이라며 “급성기 치료를 위해서는 상급종합병원에서 입원 치료 받는 게 필수인데, 빈 병상 찾는 게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 정신과 병상은 유지할수록 손해
입원 치료를 받기 전에 ‘정신응급’ 상황에서 환자를 진정시키는 공간인 안정실도 부족하다. ‘정신응급’이란 급성 정신질환으로 자살이나 폭력 등 자신 또는 타인을 해칠 우려가 있는 상황을 뜻한다. 이해우 서울정신건강복지센터 센터장은 “정신응급 상황에서 병원에 오는 환자들이 공격적인 모습을 보일 경우 먼저 안정실에서 진정을 시키고 입원시킨다”며 “안정실도 1, 2개뿐인 병원이 대부분이라 응급상황 시 중증 정신질환자 수용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 입원 어려워지면서 가족들 고통 가중
2017년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으로 입원 절차가 어려워진 것도 가족들의 고통을 더하고 있다. 현행법상 정신질환자를 비자의 입원시키는 방법은 △보호자 2명의 동의와 전문의 2명의 진단으로 입원하는 ‘보호 입원’ △자해·타해 위험이 있을 때 경찰에 의해 입원하는 ‘응급 입원’ △지방자치단체장의 명령으로 입원하는 ‘행정 입원’이다. 중증 정신질환자는 자신이 치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어려운 상태가 많아 비자의 입원 비율이 높다. 하지만 2주 이상 입원 시 서로 다른 의료기관 전문의 2명의 진단이 필요한 데다 정신질환자의 가족은 이미 해체된 경우가 많아 보호자 동의를 받기도 어렵다. 김경연 씨가 보호 입원을 문의했을 당시 전문의들이 퇴근한 뒤라 경찰관을 대동한 응급 입원밖에 방법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김 씨는 “엄마로서 아픈 딸을 어떻게 경찰을 불러 강제 입원을 시키겠냐”며 “지방의 경우 당직 정신과 전문의가 적어 보호 입원 절차를 밟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