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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하은이’ 4년만에 출생통보제 국회 소위 통과

입력 | 2023-06-28 21:13:00

30일 본회의 처리 예정




의료기관이 건강심사평가원을 거쳐 아이 출생 사실을 지방자치단체에 의무적으로 통보하도록 하는 ‘출생통보제’(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가 2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1소위원회를 통과했다. 동아일보가 2019년 1월 출생신고가 안 된 채 숨진 지 7년 뒤에야 존재가 알려진 ‘투명인간 하은이’ 사례를 보도하고 당시 정부가 출생통보제 도입 방침을 밝힌 지 약 4년 반 만이다.

여야는 이날 국회 법사위 소위원회에서 출생 신고가 되지 않은 아이가 학대받거나 방임되는 등의 위험에 처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출생통보제를 합의 처리했다. 해당 법안은 29일 법사위 전체회의를 거쳐 30일 본회의에서 처리될 예정이다. 법안은 국무회의에서 공포되고 1년 뒤 시행된다.

‘투명인간 하은이’ 사례 등으로 출생통보제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지만, 국회와 정부는 병원 밖 출산 증가 가능성 등을 이유로 소극적 태도를 보여왔다. 그러나 최근 출생 미신고 영아 살해·유기 사건이 잇달아 드러나자 여야는 법 개정에 속도를 냈다.

다만 출생통보제 보완책인 보호출산제 논의는 계속될 전망이다. 보호출산제는 출산통보제로 아이를 숨기려 병원 출산을 기피할 산모가 늘어날 가능성에 대비해 익명 출산을 지원하는 법안이다. 여당은 보호출산제 입법을 추진하고 있지만 야당은 영아 유기 증가 부작용 등을 우려해 신중한 태도다.



‘병원이 출산기록 의무 통보’ 출생통보제, 본회의 통과땐 1년뒤 시행


2236명. 2015년부터 2022년까지 출산 기록은 있으나 출생신고가 안 된 영유아 수로 사회 전반에 충격을 안긴 숫자다. 감사원은 보건복지부 감사 과정에서 예방접종을 위한 임시신생아번호로 이들을 찾아냈다.

이처럼 1년에 평균 300명 가까운 출생 미신고 아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부모가 주민센터에 출생 신고를 하지 않으면 정부가 신생아의 존재를 알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출생 신고가 되지 않은 아이는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점. 아이들이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아동학대를 의심한 조치에 나설 수도 없다. 감사원이 찾아낸 아이들 중 최소 5명이 사망한 배경이다.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제1법안심사소위원회에 최근 발생한 수원 냉장고 영아유기 사건 재발 방지를 위한 ‘보호출산에 관한 특별법안’ 자료가 놓여있다. 2023.6.27/뉴스1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것으로 전망되는 ‘출생통보제’(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가 1년 뒤 시행되면 이같은 사각지대가 해소될 전망이다. 28일 여야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1소위에서 처리한 출생통보제 법안에 따르면 의료기관은 출산 기록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전달하고 심평원에서 이를 지자체에 통보한다. 지자체는 출생 신고가 안 된 아이 부모에게 출생 신고를 독촉해야 하고, 부모가 이에 응하지 않으면 직권으로 가족관계등록부에 출생을 기록해야 한다. 또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의원이 발의한 분만을 목격하거나 분만을 조력한 119구급대원의 출동기록 사본 등으로도 출생신고를 허용하도록 한 내용도 개정안에 담겼다.

국회가 뒤늦은 입법에 나섰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9년 동아일보가 ‘투명인간 하은이’ 보도로 출생 미신고 아이들의 존재를 알렸고, 관련 법 발의도 이어졌지만 국회와 정부는 최근까지도 입법에 나서지 않았다. 그 사이 최소 22명이 학대를 당한 뒤 존재가 알려졌다는 점이 법원 판결문 분석을 통해 드러났다.

박대출 정책위의장이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아동보호체계 개선대책 민·당·정협의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3.6.28/뉴스1

앞으로 정부와 여당은 신분 노출을 꺼리는 임산부가 병원 밖 출산을 강행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보호출산제 입법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이날 민당정 회의 뒤 기자들과 만나 “(당정은)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는 같이 도입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고 말했다.

다만 민주당 일각에서 “보호출산제는 익명 출산을 보호, 장려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는 반대 의견이 있는 게 변수다. 민주당은 전날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1소위 회의에서 법사위가 출생통보제 법안을 처리한 뒤 보호출산제를 논의하자며 심사를 미뤘다. 민주당 관계자는 “출산통보제가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보고 입법 공백을 해소하는 게 맞다는 견해가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출상 미신고 사례를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면서 야당 내에서도 보호출산제 도입을 찬성하는 의원들도 늘고 있다. 법사위도 이날 출생신고제를 처리하며 복지위에 “보호출산제 도입을 조속히 처리해달라”고 건의했다. 법사위 여당 간사 정점식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출생통보제가 시행되는 1년 이내에 보호출산제가 도입되어야 한다는 데에 의견이 일치했다”고 했다.

법적 근거 마련과 별개로 보건복지부는 이날 출생 미신고 아이들의 소재 확인을 위한 전수조사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대상은 그간 출생 신고가 이뤄진 아동 등을 제외한 총 2123명이다. 지자체 담당 공무원들이 각 가정을 방문해 1차로 조사를 진행한 뒤, 필요시 경찰에 수사 의뢰하는 방식이다.

또 경찰은 이날 지자체로부터 수사 의뢰를 받은 출생 미신고 아이 12명 중 7명의 안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베트남 국적 여성 A 씨가 2015년 경기 안성에서 낳은 영아는 A 씨의 지인과 베트남으로 출국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20대 B 씨가 출산한 아기는 서울 관악구 소재 베이비박스에 맡겨 안전에 이상이 없는 상황으로 전해졌다. 사망이 확인된 2명을 제외하면 생사가 불투명한 아이는 3명 남았다.



조권형 기자 buzz@donga.com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송유근 기자 big@donga.com